경남 사천시 정동면 바느실길 258-11(예수리 241)에 위치한 대승암은 50년 이상의 오랜 시간 지켜져 온 사찰로, 수혜 주지스님이 자리하고 계시다. 수혜 주지스님은 35년 전 이곳 관세음보살 도량인 대승암으로 오셔서 지금까지 온 정성을 다해 사찰을 일구어왔다.
부처님의 특별한 기운이 있는 곳
속가나이 30세에 입문을 한 수혜 주지스님은 올해 71세로, 36세에 이곳에 처음 오셨다. 당시 대승암은 말 그대로 ‘시골 골짜기’였다.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로 차의 진입도, 사람의 접근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현재 포장되어있는 길부터 정갈한 사찰의 구석구석 모든 곳에는 수혜 주지스님의 정성가득한 손길이 닿아있다. 35년간 이곳에서 거주를 하면서 이곳을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해온 수혜 주지스님은 청춘을 다 바쳐 손수 사찰을 일구고 도량을 가꾸어왔다.
수혜 주지스님이 이곳에 처음 오셨을 때 대승암에는 신도들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수혜 스님의 수행과 정진에 대한 노력으로 1천 여 명에 이르는 신도들이 대승암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신도들이 대승암에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은 대승암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대승암에 들어서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강한 기운이라 할 것이다. 기자 역시 대승암을 찾았을 때 다른 사찰에서는 느껴본 적이 없는 확연히 차별화된 기운을 느끼며 삼배를 올렸다. 이러한 기운으로 인해 대승암에서는 수많은 신도들은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다.
수혜 주지스님의 상담 또한 수많은 신도들을 대승암으로 이끈 강력한 장점이라 할 것이다. 수혜 주지스님은 상담을 통해 신도들의 다양한 고민을 해결해주고 아픔을 치유해주고 있다. 수혜 주지스님은 상담심리학회의 자격증을 갖춘 상담심리 전문가로, 단순한 인생 상담이 아닌,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상담으로 신도들에게 깊이 있는 상담을 해주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대승암의 신도들
사천의 인근 지역은 물론 전국각지에서 신도들이 대승암을 찾는다. 뿐만 아니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곳곳에도 대승암의 신도들이 자리하고 있다. 수혜 주지스님은 일본과 중국은 물론 미국까지 오랜 시간 불사를 나갔고, 수많은 신도들과의 인연을 맺어왔다.
초칭기법당 요사채
대승암 대작불사 삽질 하는모습
부산 부전동에는 대승암 포교원이 있다. 5년간 이곳에서 포교원을 운영한 수혜 주지스님은 부산에서도 많은 신도들과의 대화를 통해 깊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코로나로 인해 전국의 모든 사찰이 어려움을 겪었을 당시 대승암 역시 많은 신도들의 발길이 끊겨 어려움에 처했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많은 신도들이 대승암을 찾지 못했지만 이 시기에도 수혜 주지스님은 전화 등을 통해 신도들과의 관계를 이어나갔다. 현재 수혜 주지스님은 휴대폰 문자는 물론 고령의 신도들이 선호하는 우편으로 소식을 전하며 신도들과의 친밀함을 이어나가고 있다.
온갖 어려움 견디며 이루어낸 불사
지금은 수많은 신도들에게 알려진 대승암이 되었지만, 수혜 주지스님의 이곳에서의 초기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처음 수혜 주지스님이 이곳에 오셨을 때 사찰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루어진 작은 공간이었다고 한다. 비가 오면 천정에서 비가 줄줄 새 3개의 들통으로 빗물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수리를 한다고 해도 헌집밖에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던 수혜 주지스님은 절을 다시 짓기로 결심했다. 주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떡과 과일을 준비하여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상의를 했고, 허락을 구하여 새로 법당을 짓기 시작했다. 동네 주민들은 모두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2층, 3층 규모의 법당이 서서히 지어졌고, 주민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이루어진 불사는 모두 수혜 주지스님의 자비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어려움은 이어졌다. 사찰의 운영을 방해하는 훼방꾼들은 끊임없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야말로 폭력을 쓰는 깡패부터 시작하여, 온갖 핑계로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들에, 불교를 반대하는 타 종교인들까지, 그들의 방해는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수혜 주지스님은 깡패에게는 강단으로, 주민들에게는 달램으로, 타 종교인들에게는 현명한 지혜로 대처해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자그마치 13년에 이른다. 수혜 주지스님은 눈물로 13년을 보냈지만 그 시간동안 도량을 지키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았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시련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그러한 힘은 ‘부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과 ‘부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강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수혜 주지스님은 말씀하셨다.
고려 현종과 그의 아버지 왕욱 위패 모셔
대승암의 법당에는 지장보살님 옆으로 커다란 두 개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는 고려 현종과 현종의 아버지 왕욱의 위패다. 대승암에 이러한 위패가 모셔져 있는 것은 특별한 의뢰를 통해서였다. 고구려 8대왕의 위패를 모시고 사당을 지어 제사를 모시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으로 이를 실행하기 위하여 이러한 내용을 청한 의뢰자들과의 만남을 갖기로 하고 잠을 청한 수혜 주지스님은 그날 밤 신기한 꿈을 꾸었다. 30대 젊은 여성을 꿈에서 본 것이다. 남루한 차림이 눈에 밟혀 옷을 사드리겠다고 하자 옷이 문제냐고 호통 치며 배가 고프다고 여인은 말했고, 수혜 주지스님은 상을 차려드리겠다고 했다. 당시 수혜 주지스님을 돕던 공양주 보살 역시 같은 날 밤 꿈을 꾸었는데, 귀여운 작은 아이가 키를 쓰고 벚꽃나무 아래에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의뢰자들과의 만남을 가진 수혜 주지스님은 의뢰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현종이 6살에 사천으로 위배를 왔고, 그의 어머니가 34세에 돌아가신 내용을 알게 되었다. 밤사이 꾸었던 꿈이 선몽임을 깨달은 수혜 주지스님은 이후 위폐를 모셨고, 2017년부터 제사를 모셔오고 있다.
2017년은 현종과 관련된 특별한 해이기도 했다. 2017년은 ‘사주’가 ‘사천’으로 승급이 된 지 천 년이 되는 해로 ‘천년교’가 착공된 해이기도 하다. 현종은 자신이 많은 도움을 받은 사천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당시 ‘사천’은 ‘사주’로 불리었는데, 현종이 ‘사주’를 ‘사천’으로 승급시켰다는 것이다. 천년교는 2019년 완공이 되었다.
입간판에 쓰인 ‘대승정사’라는 명칭도 역시 이와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큰 ‘대(大)’, 오를 ‘승(昇)’에 ‘정사’라 쓴 간판을 내려붙이라는 선몽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대승정사’라는 명칭 역시 2017년부터 쓰이게 된 것이다.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기도로 모든 어려움 이겨내
수혜 주지스님은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통해 정진을 이어왔다.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8년간 모든 산의 능선을 타고 다니며 산 기도를 드렸던 수혜 주지스님이다. 45세에 들어서면서부터는 6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대원사 계곡으로 기도를 드리러 다녔다. 목숨을 내 걸고 기도를 드려온 것이다. 수혜 주지스님의 기도 생활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지금은 매년 기도를 드리기 위해 일본 후지산을 찾는다.
4년간 태고경남비구니회의 재무국장으로 활동한 바 있는 수혜 주지스님은 비구니회의 운영과 업무에 대해 깊은 경험과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지난 해 11월 29일 태고경남비구니회 회장으로 취임한 수혜 주지스님은 강한 추진력으로 회장직을 통해 협회를 활성화시키고 그 위상을 높이며 널리 알리기 위한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신도들을 대표하여 협회의 업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임원진을 구성한 것 역시 수혜 주지스님이 이룬 결실이다. 수혜 주지스님은 회장, 총무, 감사 등을 비롯하여 13명의 임원을 선출하여 협회의 업무 진행을 위한 체계적인 틀을 구축하기도 했다.
사찰에 닥친 큰 위기
수혜 주지스님이 젊음을 다 바치고,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부은 대승암은 단순한 사찰 그 이상의 장소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고려 현종의 위패를 모시며 제사를 드리고 있으니, 그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 역시 무척이나 깊다. 천 여 명의 신도들이 찾았던 사찰의 가치를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하지만 현재 대승암은 그 가치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에 처해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수혜 주지스님은 이러한 대승암을 자신이 신도들과 함께 할 마지막 거처로 삼기도 했다. 수혜 주지스님은 사찰 옆 땅에 아픈 신도들을 돌보고 나이 드신 스님들이 머무실 수 있는 복지시설인 요양원을 설립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마칠 것을 계획했었던 것이다. 그러한 계획으로 천 평의 임야를 구입한 수혜 주지스님은 수 천 만원을 들여 조감도 작업까지 끝냈다. 하지만 땅의 일부가 아파트 착공과 맞물리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수혜 주지스님은 계획한 바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그 어떠한 합리적인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수혜 주지스님은 2015년 부시장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은 ‘예산이 부족하니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