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효촌송암길157에 위치한 혜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염불선도량으로, 덕산 주지스님이 계신 곳이다. 덕산 주지스님은 1989년 이곳으로 와 손수 사찰을 일구어 혜은사를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시켰다.
손수 일구어낸 혜은사
혜은사의 역사는 구전을 통해서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과거 아랫마을에 살던 한 사람이 아들을 낳기 위해 이곳에 움막을 짓고 100일 동안 정진을 했으며, 그 이후 비구니 스님들이 이곳에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비구니 스님들이 떠난 후 이곳은 한동안 비워져있었는데, 당시 쌍계산 말사에 계시던 덕산 주지스님이 연락을 받고 이곳에 오시게 되었다고 한다. 덕산 주지스님은 토지에 대한 명의 등 복잡했던 상황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도량을 갖추어나갔고, 계속해서 불사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35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덕산 주지스님은 이곳에서 불사를 하며 3000일 정진을 시작했다. 자그마치 10년에 가까운 시간이다. 당시 덕산 주지스님은 신장염으로 인해 건강이 무척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출가를 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정진을 이어갔고, 이는 널리 알려져 많은 신도들이 혜은사를 찾기도 했다.
‘수행자는 학문적으로 지식을 많이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 목적이다’라는 청하 스님의 말씀을 듣고 원력을 세운 덕산 주지스님은 심한 부종에도 불구하고 정진을 이어갔다. 덕산 주지스님은 800일에 가까워졌을 때 마침내 눈을 뜨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 무엇에 대해서도 막힘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직지’의 가르침 널리 알려와
덕산 주지스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을 알기 쉽게 우리말로 풀어 쓴 해설서 <돈오의 길 직지심경>을 펴낸 주인공으로, 오랜 시간 직지를 알리기 위해 큰 노력을 해왔다. 덕산 주지스님은 선불교 최초의 교과서이자 깨달음을 위한 지침서인 직지는 불교에서 비롯되었지만 불교색이 없어 정신문화개발에 가장 좋은 필독서라 강조한다. 덕산 주지스님은 오랜 시간 직지에 대한 강의를 펼쳐왔으며, 스님의 직지 강의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기도 했다. 스님은 청주를 돌며 직지 강의를 이어갔다. 덕산 주지스님은 스님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경전과 어록에 대한 강의도 많이 진행했다.
이 시대에 무너져 내린 환경, 물질에 대한 욕망 등 모든 것에 대한 답이 담겨있는 직지의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 덕산 주지스님은 직지의 내용을 음반으로 제작, 보급에 나서기도 했다. 직지에 담긴 대의와 가르침을 노랫말로 쓰고, 작곡가를 만나 곡을 만든 것이다. 덕산 주지스님은 15곡에 대한 작사를 했고, 그 중 13곡이 음반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직지 음반은 대중들을 위해 찬불가 양식이 아닌 일반 대중가요의 리듬으로 완성이 되었다.
덕산 주지스님은 한 신도의 도움으로 불교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곳에서도 덕산 주지스님은 직지 강의를 계속해서 펼쳤다.
금으로 장식된 웅장한 대웅전
덕산 주지스님은 대웅전 건립을 시작할 때 큰 의미를 세웠다. 그것은 바로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문화재로서의 건축물을 지어 후세에 남기고자 하는 것이었다. 신도들과 함께 전국의 사찰을 순례했던 덕산 주지스님은 불국사 석굴암에서 영감을 얻었다. 당시 무척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 불사로 인해 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세계적인 문화재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 감명을 받은 덕산 주지스님은 역사에 남을만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대웅전을 황금사원으로 건립하기로 결심했다.
혜은사의 대웅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황금사원과는 확실히 차별화가 되어있다. 옻칠만 6번을 한 후 금박을 붙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대웅전은 그 자체로 대단한 웅장함을 내뿜고 있다. 대웅전이 완성되기까지는 어려운 과정도 많았다고 한다. 반대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IMF 시기와 겹쳐 중단을 하기도 했지만, 덕산 주지스님은 불국사 불사를 했던 분들을 생각하며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판단으로 꾸준히 불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는 신도들이 참여해 손수 작업을 했다고 한다. 옻이 오르는 어려움 속에서도 작업을 이어갈 정도로 신도들의 정성이 담긴 대웅전은 12년에 걸쳐 완성이 되었다.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활발한 봉사활동 펼쳐
덕산 주지스님은 89년 이곳에 온 이후 90년부터 지역의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시작했다. 천여 분의 어르신을 모시고 효 잔치를 펼친 것. 사회에 환원을 하기 위해 덕산 주지스님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덕산 주지스님은 신도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고 천막을 세워 어르신들을 모셨다.
덕산 주지스님은 청주지역 최초로 운불련 법회를 시작하기도 했다. 불교를 더욱 널리 알리고 활성화시키기 위해 운전자불자모임을 만들고 그들을 지도한 덕산 주지스님은 한 달에 2번 법회를 했다. 이 회원들 역시 덕산 주지스님과 함께 경로잔치를 도왔다.
경로잔치는 무척이나 신나게 진행되었다. 풍물패가 있었고, 합창단도 구성이 되어 있었다. 불교계 역시 문화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미래가 어려울 것이라는 덕산 주지스님의 판단에 의해서였다. 덕산 주지스님은 이러한 철학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행사를 기획했다.
현재 덕산 주지스님은 독거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해 매주 토요일 반찬봉사를 하고 있다. 그 시간은 벌써 10년에 이른다. 덕산 주지스님은 봉사라는 것은 불자로서 행해야하는 기본적인 도리라고 말씀하셨다. 남을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를 위한 행위라는 것이다.
불교, 미래를 위해 반드시 변화해야
현재 불교 신자들은 주로 노인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대해 덕산 주지스님은 불교는 미래를 위해 반드시 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들을 믿는 젊은 세대들에게 불교는 우상숭배로 여겨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불교에 대한 교육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덕산 주지스님의 설명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후손을 안내해야하는 것이 지금 우리 세대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덕산 주지스님은 말씀하셨다.
덕산 주지스님이 문화적인 행사에 특별히 공을 들이는 이유도 젊은 세대를 위함이다. 젊은 층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더욱 많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덕산 주지스님은 직접 색소폰을 배우고, 밴드를 구성하기도 했다. 혜은사의 밴드팀은 현재 5년차에 접어들었다.
불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적인 문화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덕산 주지스님은 혜은사에 온 이후로 불교 의식을 우리말로 고쳐 더 많은 신도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등, 반대의 목소리 속에서도 불교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많은 것에 대한 변화를 시도해 왔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하는 것만이 불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하는 덕산 주지스님은 한국 불교의 발전을 위해서는 종단 운영에 대한 투명성을 비롯하여 스님들의 의식부터 먼저 변화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올바른 경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덕산 주지스님은 불교는 무언가를 바라며 비는 일반적인 종교가 아닌 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라며, 수행의 목적은 ‘정진’에 있음을 강조했다.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닌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불교라는 것이다. 타 종교와의 분명한 차이와 가르침이 있는 불교를 알리는 것, 그것이 바로 덕산 주지스님이 하고자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