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연화사

평택시 연화사

김태…

연화사 성혜 주지스님

 

부처님의 말씀 실천하며 베푸는 삶 이끌다

연화사 성혜 주지스님

 

-운명처럼 머물게 된 이곳, 정성으로 사찰 일구어

-어려움 속에서도 부처님의 뜻으로 이룬 불사

-끝없는 기도와 청빈한 삶 이어와

-화합과 단합으로 이루어진 신도회

-오랜 시간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 활동 펼쳐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송내안골길123에 자리하고 있는 연화사는 사단법인 조계종으로, 성혜 주지스님이 계신 곳이다. 성혜 주지스님은 2007년 연화사를 창건하여 오늘날의 단정하고 정갈한 연화사를 일구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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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머물게 되어 창건한 사찰

성혜 주지스님이 이곳에 머물게 된 것은 운명과도 같았다. 20여 년 전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된 성혜 주지스님은 빈 집 두 채를 보게 되었고, 누군가 자신을 위해 지어놓은 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청주로 향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성혜 주지스님은 이곳에 잠시 머물게 되었는데, 경매 등 주변의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아떨어지면서 이곳에 부처님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100일 기도를 하며 부처님의 뜻과 신도들의 도움으로 부처님과 후불탱화 등을 조성을 하게 된 성혜 주지스님은 금장탱화까지 조성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 믿고 기도에 매진한 성혜 주지스님은 이후 은사 스님이신 제주 관음사 조실 고봉 큰스님의 뜻을 받들어 사리탑을 모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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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 주지스님은 절을 짓기 위해 끊임없는 기도를 바탕으로 청빈한 삶을 이어갔다. 10년 간 단 한 번의 외출도 하지 않고 앞치마와 까만 고무신 두 켤레로 생활을 한 성혜 주지스님은 홀로 이곳을 지키며 기도를 했다. 삽살개 두 마리만이 스님의 곁을 지켰을 뿐이었다. 이후 철야기도에 신도들이 참여하면서 13명의 신도들과 함께 철야기도를 했고, 그들의 힘이 더해져 함께 불사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하는 성혜 주지스님은 2019년 대웅전을 신축했으며 요사채와 종무소 등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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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마음, 지역을 위한 나눔으로 실천

성혜 주지스님은 불사를 이루는 동안에도 늘 기도를 드렸다. 불사가 다 끝나면 지역을 위해 감사함을 전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지역의 어르신들을 위해 뉘우침과 감사의 마음, 깨달음의 마음을 표하고자 한 성혜 주지스님은 지역의 어르신들을 자신의 부모라 생각하고 효 잔치를 열었다. 뿐만 아니다.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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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잔치는 성혜 주지스님의 고향인 제주에서도 이어졌다. 부모님을 생각한 성혜 주지스님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 고향 어르신들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쌀을 비롯한 다양한 물품을 기증하는 등의 나눔 활동을 펼쳤다. 출가 후 참회의 마음을 갖게 된 성혜 주지스님은 부모님을 대신하여 품앗이를 해주셨던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에 대해 성혜 주지스님은 베푼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아닌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온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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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합과 화합의 신도회

연화사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신도회가 구성이 되어있다. 초기부터 함께 해왔던 13명의 신도들로 이루어졌던 신도회는 현재 26명의 되었다. 이들은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며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성혜 주지스님과 함께 연화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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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 주지스님은 신도들에게 늘 배움을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배움이다. 부처님이 늘 말씀하셨던 것은 지혜이며, 지도자가 스스로 욕심을 버려야 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부터 성혜 주지스님과 함께 해온 신도들은 지금까지 성혜 주지스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며 그 뜻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성혜 주지스님의 철학은 스님의 일생에 담겨있다. 성혜 주지스님은 안타까운 사연이 있어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의 장례를 치러주기도 하고, 49제를 지내주기도 했다. 이러한 성혜 주지스님의 뜻을 따르는 신도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서로를 도울 수 있도록 함께 기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봉사는 물론 나눔을 위한 보시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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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을 위한 다양한 활동

상황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성혜 주지스님은 처음부터 나눔을 실천해왔다. 직접 된장을 담아 팔며 봉사 기금을 마련하는 등 나눔을 위한 행동을 몸소 실천했다. 신도들은 스님이 과연 혼자의 몸으로 얼마나 활동을 이어갈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스님은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고, 그 모습을 본 신도들은 이후 자발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는 이러한 활동은 그 어느 사찰의 신도회보다 강한 단합과 결속력을 바탕으로 실천되고 있다.

 

이러한 신도들은 연화사에서 이루어지는 주요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1년에 한번 이루어지는 방생 때는 100가구 이상이 참여를 한다. 형식적인 방생이 아니라 장어 방생을 통해 참된 의미의 방생을 실천하는 성혜 주지스님은 그 의미에 큰 가치를 두고 신도들이 그러한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선몽 통해 나랏일 예언하기도

성혜 주지스님은 기도를 잘하는 스님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성혜 주지스님은 얼마 전 꿈을 통해 나라의 큰일을 예견하기도 했다.

 

시끄러운 나라를 위해 기도를 하러 갔다 꿈을 꾸게 된 성혜 주지스님은 꿈에서 저승사자가 보여준 시커먼 소나무를 보았다. 모자를 벗은 저승사자는 부처님이었으며, 목이 뚝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까맣게 탄 해가 다시 동쪽으로 올라가는 모습도 보았다. 산이 시커멓게 다 타버렸고, 백호가 무언가를 물어 사람들 앞에 팽개치기도 했다. 꿈에서 이러한 모습을 본 성혜 주지스님은 3월 초하루 법회 때 삶이 힘들 것이며 모두가 함께 조심히 이 시기를 보내야 할 것이라고 법문을 했다. 성혜 주지스님의 예견대로 정말 크게 산불이 낳고, 불자들의 눈물에 피눈물이 났으며, 대통령은 파면이 되었다. 성혜 주지스님의 선견지명이었다. 대통령의 선고일에도 성혜 주지스님은 꿈을 통해 결과를 예측했다. 성혜 주지스님은 올 가을이 되면 나라가 조금 안정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성혜 주지스님과 연화사의 시작을 함께 했던 13명의 신도들은 지금까지 연화사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며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모든 신도들은 자녀를 무탈하게 성장시키고 출가 시켰으며, 사업에서도 크게 번성을 하며 부처님의 가피를 경험하고 있다. 지역민들뿐 아니라 서울, 수원 등 전국 곳곳의 신도들이 연화사를 찾고 있다. 성혜 주지스님은 신도들과 깊은 소통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20년이라는 시간동안 함께 해준 신도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낀다는 성혜 주지스님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신도들의 자녀가 결혼을 할 때에도 특별하게 마음을 표한다. 신도들의 생일에는 직접 꽃을 준비해 선물을 하기도 한다. 좋은 것은 항상 신도들과 나누고 싶다는, 자신의 것을 모두 신도들에게 내주고 싶다는 성혜 주지스님이다.

 

늘 부처님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작은 생명들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 이 시대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하는 성혜 주지스님은 앞으로 연화사 내 사단법인 장학재단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신도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간 쌓아온 성혜 주지스님의 덕과 신도들과의 깊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성혜 주지스님은 모두가 윤회라고 말씀하셨다. 성혜 주지스님의 또 다른 목표는 신도들을 위한 복지시설인 요양원을 건립하는 것이다. 콩알 한쪽이라도 나누고 싶어 하는 성혜 주지스님은 요양원에 대한 계획 역시 신도들과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