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초원의 풀들이 서풍을 타고 사르륵 사르륵 가락을 켠다. 짙푸른 하늘 아래 바다와 흙 내음이 뒤엉켜 자연의 향기를 뿜어낸다. 거부할 수 없이 폐 속 깊이 파고드는 목장의 공기는 요 몇 년간 폐부 어딘가에 쌓여있을 미세먼지를 털어내는 듯 했다. 이렇게 그지없이 청정하고 또 광활한 초원에 80마리의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정겨운 소리도 들린다. ‘음매~~~’ 목장 내 축사 뒤로 여물을 챙기는 푸근한 인상의 목자를 만났다. 소들에게 건초도 함께 챙겨 먹어야 된다며 눈웃음을 짓는 그는 아침미소 목장의 주인 이성철 대표였다.
(www.morningsmile.kr)
아침미소목장은 1974년 이성철 대표의 아버지 고 이경수씨가 오현중,고등학교 교장 은퇴 후 설립한 젖소목장이다. 그리고 6년 후 이 대표가 이 목장을 물려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친환경낙농체험목장으로 선정되던 2008년 까지 이 대표는 암울했던 침체기를 겪었다고털어놓았다. 평범함이 싫었던 그는 소젖 보다 종자를 우선해 씨수소를 키우고자 연구하고 투자하며 애면글면 했는데 씨수소는 정부출연기관이나 농협에서 전담하고 개인이 하는 것은 불가능이란 것을 알게 되어 좌절을 겪었다.
이후 낙농협동조합장을 맡으며 업계를 이끌어보려 했으나 조합이 제주 축협으로 흡수되며 다시 위기를 겪게 되었다. 축협에서 정상적인 양을 주지 않고 270리터의 쿼터량 배정으로 그 이외의 우유는 국제 분유 단가인 200원에 책정되어 생활비는 고사하고 빚에 허덕이는 신세가 되었다. 이 대표는 목장을 팔아버리자 결심했다. 그런데 이 목장을 사겠다는 사람이 도통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와 그의 아내는 목장에서 우유가 아닌 다른 것에 승부를 걸어보기로 마음을 돌렸다. 2004년부터 아내는 치즈 가공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 ‘전국자연치즈 컨테스트’에 출품해 금상을 수상했다. 어쩌면 그때 부터였을 것이다. 아침미소목장이 바닥을 치고 다시 서서히 생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이 대표는 이후 우연처럼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운이 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6년, 농림축산식품부 출연기관에서 체험 목장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났다. 이듬해 신청했는데 덜컥 합격했다. 전국에서 농가 4곳이 선정되었다. 체험목장으로 선정되긴 했지만 목장 안에 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 건물 아래 하수구 등 기반시설이 갖춰지지 않으면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축산시설로 허가를 받았다. 아쉬운 대로 이곳에서 치즈와 요구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2008년 제주지역신문에 5줄로 아내의 치즈수상경력이 짧게 실렸다. 당시 KBS ‘6시내고향’ PD가 이 신문을 보고 방송에 출연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방송이 나가고 다음날, 제주에 휴가 차 내려와 있던 서울의 한 와인바 사장이 목장을 찾아왔다.
그 사장은 전날 방송을 보고 와인바에서 안주로 팔 고급 치즈를 사러왔다고 했다. 당시 목장에서 벌어들이는 한 달 매출이 60만원이었는데 그 사장이 한번에 30만원 어치를 구매했으니 그에게는 큰 고객이었다.
이 대표는 와인바 사장이 구입한 치즈를 택배로 보내기로 했다. 택배 상자에 치즈를 넣고 보니 상자가 너무 커 빈 공간이 허전했다. 그래서 목장에서 만든 요구르트를 덤으로 담아 보냈다. 이 요구르트가 큰 사고를 치게 된다. 서울에서 와인바를 한다는 사장의 친형이 대형 P프랜차이즈 그룹의 회장이었다. 택배가 와인바에 도착하던 그 날, P프랜차이즈 그룹의 회장도 동생의 바를 방문했고 요구르트를 맛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수행비서가 즉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날아왔다. 전국의 P프랜차이즈에 요구르트를 납품하기로 계약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손으로 직접 하던 터라 그 많은 지점에 납품을 할 수 없었다. 기계가 필요했다. 기계를 구입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제주 시청과 도청을 찾아가 현 상황을 브리핑하고 총 2억 원의 투자금을 지원 받았다. 그것으로 기계를 사고 시설을 갖추었다. 파리바게트로부터 10개월의 위생 교육을 받고 납품을 시작했다.
얼마 뒤 또 한 손님을 만나게 된다. 현대백화점에서 제주상품 기획전을 열기 위해 제주에 내려와 한 달을 돌아다녔는데 좋은 상품을 찾지 못해서 제주상품 기획전을 포기 하게 된 상태에서 우연히 아침미소의 요구르트를 접하게 되었다며 현대백화점으로 꼭 납품해 달라는 청을 하고 돌아갔다. 그 청년이 고맙다고 연신 인사했지만 정작 고마운 것은 이 대표였다고 회상했다.
한 해 방문객 10만 명, 아침미소목장의 인기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수치다. 그러나 7만평 부지에 방목된 소는 80마리, 100억 매출의 무한한 사업계획을 세워서 현재진행형이다. P프랜차이즈에서 더 많은 생산을 위해 30억 원을 무이자로 빌려 줄 테니 소를 더 늘리라고 했지만 그 역시 거절했다. 여행사에서 패키지로 묶어 관광객을 더 유치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이 또한 거절했다. 이 대표는 소를 더 늘릴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소들이 스트레스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지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건강해야 양질의 우유가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치즈와 요구르트가 만들어 지는 것은 바로 이 건강한 소와 우유에 있다고 그는 믿었다.
“뭐든지 재료가 좋아야죠. 그래서 저는 1차 산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좋은 농산물에서 좋은 가공품이 나온다는 게 그의 철학이자 철칙이었다. 그 많은 손님들이 오는데도 이곳에는 화장실이 한 개뿐이다. 축산 시설로 간단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2년 후 목장 옆으로 제2 첨단과학단지가 들어서면 기반 시설이 생길 것이라며 그날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업으로 이 목장이 대대손손 이어지는 것이 그의 마지막 소원이자 꿈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10년 농립수산식품부 선정 신지식인’ 반열에 올랐고 ‘2012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 표창’, ‘2013년 농림축산 식품부장관 표창’, ‘2014년 농림부장관 친환경축산 대상’, ‘2014년 제주도지사 자랑스런 농업인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그의 아내도 해마다 ‘전국자연치즈컨테스트’에 출전해 금상 5관왕을 받는 등 온 상을 휩쓸었다.
친환경인증 체험목장 ‘아침미소’에서는 아이스크림, 피자, 치즈 만들기, 송아지 우유주기 등 다양한 체험거리가 진행된다. 또 목장의 소들을 가까이서 관찰 할 수 있고 좋은 우유가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다. 단, 만들기체험(피자만들기, 치즈만들기)은 반드시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목장에서 생산되는 치즈와 요구르트는 아침미소목장 홈페이지와 우체국 쇼핑을 통해서도 구입 가능하다. 건강한 소가 낳은 건강한 식품 덕분에 아침에 큰 미소를 짓게 된다하여 이름 짓게 된 ‘아침미소목장’, 아침미소 목장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결코 운이 아니었다. 하늘이 준 기회였다 하더라도 이 대표의 강건한 철학과 철칙 그리고 그의 아내와 함께 했던 땀의 결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건강한 맛을 지키고자 애써온 이들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