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와 제주경마장은 오는 2023년부터 제주 경마장 ‘레츠런파크’에서 열리는 경마대회에서 한라마를 제외한 제주마만 출전키로 했다. 한라마는 우리 재래종인 제주마와 서울, 부산 경마장에서 뛰고 있는 더러브렛종을 교배시켜 만든 새로운 종이다. 제주산마로 불리다 한라마로 개칭되었다. 제주 경마장은 지난 1990년 천연기념물이 된 제주마를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설립되었는데 문을 연 당시 경마에 출전할 제주마의 수급이 좋지 못하자 제주마의 혈통이 섞인 한라마에게도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최근 제주마의 수급이 늘어나며 본디의 취지를 되살린다는 의미를 내세워 한라마의 출전권을 박탈한 것이다.
정부는 선진국의 사례를 들어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골프, 승마, 요트와 같은 고급 레져가 각광받을 것으로 보고 최근 승마산업을 장려하고 있다. 제주 경마장에서는 천연기념물이 된 제주마로 활용하고, 제주특별자치도는 승마산업을 키워 한라마를 승용마로 새로이 브랜드화 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 말 생산 농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라마 생산농가는 승마산업에 대한 국가 지원 정책이 형평성에 어긋날 뿐 아니라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즉 실효성이 없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국가가 지원하는 승마 장려 정책으로 일반인들이 승마를 접하기는 좋아졌다. 일단 가격부터가 떨어졌다. 타는 사람이 30~50%를 내면 국가에서 나머지를 지원한다. 문제는 이 같은 지원 사업을 받는 승마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혜택을 받는 사업자는 돈을 벌 수 있지만 혜택을 못 받는 사업자는 가격 경쟁력에 빌려 문을 닫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사)대한말산업진흥협회 노철 회장은 한쪽에서는 문을 닫고 있는데 국가에서 장려한다는 이유로 다른 쪽에서는 승마장을 계속해서 허가해 주는 것도 문제라며 형평성과 실효성이 없는 정책방향을 다시 잡아줄 것을 요구했다.
노 회장은 국가 정책 지원금이 공평하지 못해 득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 때문에 망하는 사람도 있다며 승마 산업의 답답한 속사정을 풀어놓았다. 그는 시설 지원금이 신규사업자 위주로 지급되는 부분, 그리고 일부에게만 돌아가는 불편한 승마체험 지원금을 꼬집었다. 신규로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되면 정부에서 보조금이 나온다. 장려 정책으로 총 투자 금액의 40%를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30%는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는다. 자기 자본금 30%만 있으면 승마 사업장을 개설할 수 있다. 문제는 승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개업을 하고 승마체험지원금까지 받아 챙겨 전체적으로 승마 시장의 가격 하락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노 회장은 “시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승마 체험 지원금도 받지 못하는 기존의 업체들은 존폐의 위기에 처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왜 10년 이상 몸을 담고 있는 기존의 업체들을 더 잘 키울 생각은 안 하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들이야 말로 전문가들이라며 한라마를 승용마로 키울 것 같으면 이들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라마를 키우기 위해 육지의 유소년 승마로 일부 거래가 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극소수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러한 부분적인 지원보다 보다 미래를 바라볼 수 있도록 광범위한 사업을 육성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대한말산업진흥협회는 한라마의 저변확대를 위해 지난해부터 한라마 지구력 대회와 오픈레이싱을 개최했다. 독자적인 대회라기보다 제주마 축제기간 내 프로그램 중 하나로 마사회로부터 일부 지원금을 받아 개최했다. 노 회장은 “한라마는 제주마와 더러브렛종보다 더 튼튼하고 잔병치레도 없을 뿐 아니라 식사량도 적어 기르기 좋은 말”이라고 소개했다. 또 “크기가 적당해 유소년승마에도 좋고 발목이 튼튼해 지구력 승마에도 탁월하다”고 했다. 노 회장은 “제주마도 키워야 하지만 그동안 키워온 한라마도 함께 키워줘야 한라마 생산농가들도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라며 “승마 동호인들이 참여하는 지구력대회와 관객이 즐길 수 있는 한라마 오픈레이싱”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했다.
말 산업은 크게 경주마, 승용마, 육용마로 구분되어진다. 수입으로 보면 경주마가 가장 좋다. 좋은 말 한 마리만 잘 키워내면 웬만한 사업 못 지 않는 고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다. 승용마는 육지보다 제주에서 인기가 좋다. 그나마 관광지라는 특수가 있기 때문이다. 육용마는 사실 수익이 없다는 게 현실이다.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시험장에 따르면 340kg짜리 육용마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경비가 290만원인데 농가 수취 가격은 300만원 선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 회장은 “300kg을 기준으로 일반생산농가들은 고기값으로 200만원을 받고 있고 실 투자금은 270만원이 들어간다”며 “이게 농가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시간과 노력을 빼고도 마이너스인 셈이다. 육용마는 경주마와 승용마로 쓰일 수 없는 말들로 만들어진다. 또 식용으로 쓰고 난 나머지 부위로 가방, 허리띠, 마유화장품과 같은 상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육용으로 말을 키워 상품가치를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노 회장은 (사)대한말산업진흥협회장, 관광협회승마장업 분과위원장, 대한장애인승마협회 법제상벌위원, 서귀포승마협회고문, (사)전국승마사업자협회제주회장, (사)한국말조련사협회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또 제주에서 OK목장을 설립해 외승(말을 타고 야외로 나가 승마를 즐기는 것)사업을 30년째 업으로 삼고 있는 사업주이기도 하다. 그의 아내는 경마장의 마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농가와 업계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업계의 어두운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며 말을 키우는 농가와 승마인들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이 펼쳐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인이 아닌 여기 오랜 시간 말과 함께 해 온 사람들, 농가와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노 회장은 최근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 농림축산식품부에 새로운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상태다. 농가들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그들이 찾아 제시한 것이다. 모쪼록 이들의 사업계획서가 잘 통과되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