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닥으로 묶었던 머리는 온데간데없다. 산에서 내려온 지 어느덧 12년, 표고와 함께 한 세월만큼 되었다. ‘천제표고버섯’의 박천제 대표는 귀농하기 전 온 산을 누비며 1997년에 집을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 오랜 시간 살다보니 산에서 내려오지 않아 머리를 깎을 수 없어 저절로 머리가 길었고, 주체할 수 없는 머리를 정돈하다 보니 한 가닥으로 묶어야 했다. 뒤에서 보면 여염집 아낙네라고 했을 만큼 그렇게 길었다. 그렇게 십 여 년을 산으로 다니다 본가가 합천으로 귀농하며 산에서 내려왔다. 사실 박천제 대표는 합천 가회면 출신이었고 그의 아내 권현정씨도 산청군 단계리 출신이었다. 아내가 도심에서의 삶을 접고 고향으로 귀농하자며 남편을 불러 앉혔다. 山사람에서 가정을 돌봐야 하는 가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긴 머리를 잘랐다. 산에서 내려와서도 고향마을에서 매니저 일을 맡아 하며 산과의 연을 아주 끊지는 않았다.
2008년 합천군 생태마을 추진... 표고버섯 사업 지원
산림청은 합천군 산림과와 함께 지난 2008년 황매산 모산재 기슭에서 12억짜리 산촌생태마을마을 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블루베리와 복분자 그리고 표고버섯 사업을 지원했는데 표고버섯 사업이 부진했다. 산림과의 담당공무원이 “귀한 국가 세금으로 한 사업인데 이대로 해서는 안 된다.”며 표고버섯에 관해 통달한 선생을 데려 왔다. 그 선생과의 만남이 표고버섯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합천군 표고버섯 사업이 번창하는 것을 보고 수익이 되겠다 싶어 박천제 대표와 권현정씨는 2011년 표고 사업에 함께 뛰어들었다.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표고선생이 시키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버섯을 팔아 한 동 짓고, 또 버섯을 팔아 한 동씩 짓다보니 어느새 21동이 되었다. 묵묵히 선생을 따랐기에 세월이 흐르며 어느새 버섯에 통달하게 되었다. 마을에 살 때보다 하우스 옆에 농가주택을 짓고 생활하니 자다가도 나가보고, 밥 먹고서도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표고와는 뗄레야 뗼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원목 힘들지만 수확시기 및 수확량 조절 가능해
표고는 원목에서 자라는 원목 표고가 있고 톳밥에서 자라는 배지 표고가 있다. 키우기는 배지가 훨 수월한데 표고 선생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원목 재배를 이어오고 있다. 원목은 나무에 물을 흠뻑 먹인 후 두 번 뒤집어 줘야 해 굉장히 힘이 든다. 한 동에 800본에서 900본의 원목이 있다. 젊었을 때는 힘든 줄 몰랐는데, 이제는 여기저기서 신호가 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거다. 표고버섯은 타 작물과 달리 수확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얼마나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수확량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러니 무리해 가며 일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생표고보다 건표고가 인기여서 수확하고서도 서둘러 팔아야 할 걱정이 없다. 상품만 잘 만들어 놓으면 언제나 팔리는 것이 천제표고버섯이다.
덤으로 주는 건표고가루 차로 마셔도 좋아
영양분이 농축된 건표고는 비타민D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이렇다 보니 골다공증을 예방하고 골격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말리는 과정에서 아미노산의 일종인 구아닐산나트륨이 생성돼 버섯의 향미도 보다 더 강렬하다.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표고버섯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버섯의 항암효과와 면역력 때문이다. 천제표고버섯의 고객들은 대부분 단골들이다. 원목에서 친환경 재배로 생산되는 고품질 표고버섯이란 것을 알고서 늘 주문이 들어온다. 박천제 대표는 “아내가 늘 택배를 보내며 표고버섯 가루를 인심으로 넣어주는데 고객들이 거기에 또 감동하는 것 같다.”며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런 게 또 정이고 작은 즐거움 아니겠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말린 표고 가루는 국물요리에 주로 쓰이지만 몸이 으슬으슬할 때 따뜻한 차로 마시면 좋다고 했다.
천제표고버섯의 원목은 직접 벌목해 온 것들이다. 산림과에 가서 허가를 받아 벌채를 하는데 한 번 가면 보통 만본 정도 벌채해 온다. 표고버섯을 키우는 건 타 작물 보다 수월하지만 준비하기 까지는 만만찮다. 나무는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굴피나무 등이 있는데 상수리나무가 버섯 발생량이 많고 품질이 우수해 1등급으로 친다. 나무를 벌채해 오면 종균 접종을 하는데 이 시기에 손이 많이 간다. 버섯을 키우는 동안 특별히 주의할 점은 온도다. 표고버섯은 일반적으로 18도가 가장 좋은 온도라고 알려져 있지만 박천제 대표는 “15도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자란 아이들이 더 단단하고 찰지다”며 “모질게 커서 더 강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표고버섯은 원목보다 톳밥으로 하는 배지 재배가 더 수월하다. 무거운 원목을 뒤집어야 하는 노역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지로 바꾸려면 비용이 만만찮다. 원목 재배는 하우스 한 동 짓는데 직접 설치해서 백만 원이면 충분한데, 배지농법은 기본 3천만 원이 든다. 12년을 표고버섯을 재배해 온 박천제 대표에게도 이 금액은 부담이다. 몸이 다소 힘들어도 쉬엄쉬엄, 마음으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한다. 박천제 대표는 “그래도 표고버섯으로 농사지으며 아이들 교육 다 시켰으니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힘들다는 생각보다 기특하다는 생각이 더 든다.”며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먹고 살 만큼만 유지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농수산이력제가 시행되며 아내는 표고버섯에 남편의 이름을 붙였다. 남편처럼 남다른 최고의 표고버섯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지금 그 이름대로 ‘천제표고버섯’은 상품 중에서도 으뜸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술 한 잔 하고도 랜턴을 들고 하우스를 돌아보며 술을 깨운다는 박천제 대표는 표고와의 삶속에서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사는 듯 했다.
한 번씩 아내가 처가에 가면 박천제씨는 그날이 기회다 하고 산을 오른다. ‘다시 또 산으로 가실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후에는 다시 가야죠”라고 말했다. 이런 박천제씨를 보며 아내도 “저도 좋아해요.”라고 맞장구 쳤다. ‘함께 가시면 좋겠다’ 하니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산은 혼자 타야 맛”이라고 한다. 산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더니 산을 타는데 그 어떤 거슬림도 원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