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비우고 공의 사상을 취하다.

모든 것을 비우고 공의 사상을 취하다.

김태…

태고종, 법성사 주지 자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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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말 창건된 법성사 설화 욕심이 화()가 되다.’

모두가 내 탓’, 죽어서 천당 가려 하지 말고 현재 있는 곳을 천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철새 사진 촬영 자연에 순응하고 살아야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에 자리하고 있는 법성사는 신라 말기에 창건된 절이다. 1994년 칠곡군지편찬위원회가 채록한 칠곡군지에 따르면 지금으로 부터 3~400년 전 현 기성리 법성동에 있는 3층 석탑(보물 제 510)을 중심으로 그 일대가 모두 절이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당시 제법 큰 규모로 창건됐던 법성사는 훗날 흔적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여기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법성사가 당시 크게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법당의 천정에서 쌀이 계속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매 끼니때마다 절에 있던 사람들이 먹을 만큼의 양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밥을 짓던 공양주가 한꺼번에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해 막대기로 쌀이 나오는 구멍을 깊게 쑤셔대자 갑자기 그곳에서 피()가 쏟아지더니 쌀은커녕 빈대가 들끓기 시작하면서 폐사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과한 욕심이 화()를 불러온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아닐 수 없다. 법성사가 폐사가 된 사연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 내용의 진위에 대한 공방 보다는 결국 욕심으로 인해 법성사가 폐사되었음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요지일 것이다.

 

지금의 법성사는 주지 자은 스님이 새로이 중창한 절이다. 과한 욕심으로 절이 폐사가 된 법성사의 안타까움 때문일까. 자은 스님이 도량에서 늘 강조하는 것도 비움이었다. 이 또한 인연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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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비우고 공의 사상을 취하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그냥 오늘 하루 내가 쓸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 되요. 내일은 또 내일 필요한 만큼만 부처님이 가져다주십니다.” 자은 스님은 통장에 3만원이 전 재산이라며 승려라면 비우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방불교를 따르고 있는 미얀마와 라오스에 가면 사람들 마음이 넉넉해요.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에요. 물질에 대한 소유욕 보다 필요한 만큼만 소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요. 참 본받을 만한 부분이죠.” 스님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누구는 불교 국가가 가난하다고 하지만 다른 종교 국가들을 들여다봐요. 늘 싸우고 전쟁하고 서로 헐뜯고 죽이기 바빠요. 불교 국가는 겉으로 보기에는 가난해 보이지만 베풀고 나누어 줄줄 아니 그 마음이 진짜 부자인 거예요.”

 

자은 스님은 부자가 되고 싶고 복을 받고 싶거든 덕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스님은 쓰는 만큼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쓰라고 강조했다. 많이 베풀고 많이 쓰다보면 마음도 넉넉해지고 수중에 돈이 없어도 필요한 게 생기면 저절로 구할 수 있게 된다는 삶의 중요한 이치를 설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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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진정한 불성을 찾아서...

많은 스님들이 신도들을 모집하기 위해 절에 오라고 하는데, 자은 스님은 올 거 없다고 말했다. 좀 더 깊이 그 말뜻을 들여다보니 그 말씀이 진리임을 깨닫게 된다. 자은 스님은 내가 있는 곳이 바로 법당이라고 설법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곧바로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앉아 5분간 명상을 하라고 해요.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15분만 시간을 쪼개 108배를 하라고 하죠. 우리가 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자성하기 위함이에요. 나는 낮춘다는 거죠. 그러니 꼭 절에 와서 기도할 필요 없어요. 집에서 내 스스로 수양하는 시간이 더 중요해요.” 스님은 절에 오는 것은 스님에게 법문을 듣고 사회 생활하는데 좀 더 좋은 지침을 얻고자 오는 것이지 무엇을 구하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또 부처님을 봉양하기 위해,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온다고 하는데, 집에서 자식을 부처님 보듯 하고 남편을 부처님 모시듯 해야 한다며 그것도 못하면서 무슨 부처님을 모시러 오느냐고 꾸짖었다.

 

스님은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사회가 어둡고 가정이 불운한 것을 남 탓, 상대방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사회와 가정을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양보하고 비우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바르게 자라지 못하는 것도 내 탓이요. 사회가 이 모양 이 꼴로 돌아가는 것도 모두 내 탓이라는 것이다. “죽어서 천당, 극락 가려고 하지 말고,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곳을 천당, 극락으로 만들면 되요. 배려하고 양보하고, 그 모습을 자식들이 보고 배우면 우리의 가정이 바로 극락이고. 그 가정을 이루는 이 사회가 천당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남 탓 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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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2020년 새해가 밝아오며 새해 덕담을 여쭈었더니 스님은 새해는 지나가는 숫자에 불과할 뿐 특별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순간 불경 천지팔양신주경의 글귀가 머리를 스쳤다. ‘일월광장명’(日月廣長明, 해와 달은 항상 밝고) ‘시년선선미’(時年善善美, 어느 해 어느 시간이나 좋고 아름답기만 하다.). ‘월월선명월’(月月善明月, 달마다 좋은 달이요) ‘년년대호년’(年年大好年, 해마다 좋은 해로다.)이라.’ 자은 스님은 새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그 순간 가장 중요하다며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법했다.

 

칠곡 군청 홍보관에서 새를 주제로 한 사진전이 열렸다. 자은 스님이 법성사 인근의 우포늪과 주남저수지에서 철새들의 비상을 찍은 사진 40여점 이다. 스님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보며 자연의 섭리를 배운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학교 간다고 인사하고 나와 논두렁에 가방을 벗어던지고 곧바로 출가를 했다는 자은스님은 행자시절을 거쳐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수행을 한 후 태고종에 소속됐다. 스님의 속세의 부친은 대구 영신제단과 제천 대제 중학교를 설립한 이사장이기도 했다. 부유한 집안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를 결심해 부처의 길을 가고자 한 자은 스님은 모든 것을 비움으로써 공()의 사상과 그로 인해 경험할 수 있는 진정한 행복, 불성을 불자들에게 일깨워주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