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은 비범한 기운을 품은 영산이자 불교의 성지다. 불교가 융성했던 시절 비슬산에는 99개의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유가사, 소재사, 용연사, 용문사, 용천사 등 몇 사찰만이 법등을 이어오고 있다. 삼국유사를 지은 대스님 일연스님 역시 비슬산에서 수년간 참선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비슬산 자락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다 보면 각료암을 만날 수 있다. 마을에서 족히 10리 (4km)를 넘게 들어갔을 때에야 기와를 얹어 만든 대웅전이 눈에 들어왔다. 소박하고 아늑한 규모다. 4년 전 주지로 부임한 대운 스님은 “대한민국 전체에 이만큼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사찰이 없을 것이다. 1940년 마을 어른들이 나무로 지은 법당이 아직도 그대로다. 오래되어 낡고 초라하다 할지 모르지만 순수함이 있다.”고 소개했다. 주지스님이 기거 하는 거처 역시 앞서 머물던 사형이 직접 손으로 지어 창고로 쓰던 자리라고 전했다. 대운 주지스님은 이 곳에서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비슬산의 천년고찰 용흥사를 복원하려는 큰 뜻을 진행 중이었다.
포산이성 관기 도성, 신라시대 성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삼국유사에 보면 ‘포산이성 관기 도성(包山 二聖 觀機 道成)’이 나온다. 포산이성은 속세를 떠나 비슬산에서 살았던 신라때 성사인 도성과 관기를 일컫는다. 도성은 북쪽 봉우리에 살았고 관기는 남쪽 마루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이 두 승려는 득도를 하고 사라졌는데 후인들이 도성이 좌선하던 굴 아래에 절을 지어 도성암이라 하고, 관기가 있던 산마루는 관기봉이라 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 지명이 남아있다.
대운 주지스님은 “도성대사가 불사한 것이 유가사이고, 관기대사가 성취하신 것이 바로 용흥사라는 대찰이다.”라며 이 용흥사를 복원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용흥사 대찰은 현재 흔적만이 남아 있지만 조선 왕조 때까지도 왕실 원찰로 있었다는 사료가 전해내려 온다. 영조 때 환영공주가 자주 왔다갔다는 기록이 있는 것.
창녕 용흥사의 흔적은 국보 제75호로 지정된 ‘표충사 청동함은향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향완으로 향완이란 절에서 마음의 때를 씻기 위해 향을 피우는 데 사용하는 도구다. 현재는 표충사에 보존되고 있지만 향로의 받침 안쪽에 새겨진 글을 보면 원래 이 향완이 있었던 곳이 창녕 용흥사였음을 알 수 있다. 대운 주지수님은 “이 향로에 명문 44자가 새겨져 있는데, ‘고려 명종 1177년 창녕현 북면 용흥사에 고려 명종이 올린다’라고 나와 있다.”고 전했다.
대운스님이 직접 문화재청에도 신청해 문화재위원들이 지표조사를 나와 용흥사 터에서 유물을 발굴하기도 했다. 도자기 파편이나 기와 파편 등 보물 급 유물들이다.
용흥사 재건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안타까워
설명을 듣다보니 용흥사는 신라시대 대승려의 기운이 담긴 영험한 사찰로 재건하는 것이 응당 당연해 보였다. 우리 민족정기를 수호하고 불교성지를 복원하여 국가의 기운을 북돋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용흥사는 단순히 사찰 하나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창녕의 비보사찰로서의 의미가 크다. 대운 스님은 “풍수지리적으로 봤을 때 창녕 남쪽으로는 사찰이 다 살아있다. 하지만 북쪽의 주요 사찰인 용흥사를 폐사시켰기 때문에 창녕의 기운을 다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산의 기운을 받으면 진짜 큰 인물이 나올 것이다. 창녕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위해 에 큰 인물이 나와야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전국 왕실 원찰 찾아다니다가 용흥사 불사 하려다가 팔공산으로 옮겨갔다고 해 안타깝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운 주지스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그 길이 막힌 상태다. 건축사무소를 통해 창녕군청에 건축 허가를 내려 했지만 임도라 건축 허가를 내 줄 수 없다는 회신만 받은 상태다. 대운 스님은 “이 곳에서 국보 75호가 출토했고, 또 사료를 통해서도 용흥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데 현행법 때문에 재건이 막혀 안타깝다.”며 탄식했다.
경찰이 각료암으로 향하는 길 4km 가운데 200m 구매한 뒤 천만 원 요구해
최근 근처에 길을 사서 들어온 한 사람의 상식을 벗어난 행태도 골칫거리다. 대구시 경찰 공무원 A 씨가 주변 3만평이 다 절 땅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임지를 매입한 뒤 길 사용료를 내 놓으라며 얼토당토않은 떼를 쓰고 있는 것. 땅을 매매하라는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플랜카드를 내걸며 각료암을 찾는 신도들과 스님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분쟁은 4년 전부터 시작됐다. A씨는 사찰 진입로 일부를 구매한 뒤 사찰에 드나드는 수많은 신도들이 길을 사용하는 데 대한 비용을 천만 원 요구하고 있다. 그가 소유한 길은 산 입구에서 각료암으로 향하는 길 4km 가운데 200m 가량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 이 길은 1997년 마련되어 지금까지 23여 년간 통행로로 이용되어 왔다. 매년 각료암에서 정비를 하고 보수를 해 오던 길이다. 그런데 갑자기 A씨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통행료를 요구해 마찰을 빚게 된 것. 참다못한 각료암의 대운 주지스님은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대운 스님은 “갑자기 길을 막아놓고 통행료를 요구하니 황당할 따름이다”라며 “수백 명의 신도들이 다니는 길을 개인의 영리를 목적으로 폐쇄하고 통행료를 내라는 것은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일이다"라고 하소연했다.
더군다나 통행료를 요구하는 A씨는 자신을 대구의 경찰 공무원이라고 말하며 공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A씨는 이 외에도 비상식적인 행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속옷 차림으로 길에 나타나거나 버섯 나는 철이면 한 달 내내 머물면서 불법적으로 송로버섯을 채취하는 등의 행태가 자주 목격된 것. 일부 여성 신도들은 “여름이면 팬티만 입고 길을 서성대는 모습에 기함을 했다. 성스러운 종교 시설로 향하는 길에 의도적으로 과한 노출을 하여 불쾌감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전했다.
대승려인 관기스님의 큰 뜻으로 마련된 용흥사. 그 비범한 기운 한 가운데 자리한 각료암에서 대운 스님은 지금까지 참선하고 수행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종단과 신도 분들을 위해 불사를 해 드리고 싶다는 열망이 크다고 전했다. 우선은 60평 규모로 용흥사 재건의 물꼬를 트고 점차 중생을 위한 기도처로, 불사로 키워 내고자 하려는 계획도 완벽했다. 용흥사가 재건되면 각료암과의 거리는 도보로 10여분 정도면 된다. 제대로 된 불사를 갖추고 각료암은 깨끗한 기도처로 하고자 한다는 대운 스님의 계획이 꼭 성취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