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삼봉산 중턱, 약초골농원에 들어서자 자유롭게 노니는 닭들이 울음소리로 반겨주었다. 자연 방사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사료만을 먹고 자란 행복한 닭들이다. 약초골 농원은 전체가 유기농 농장이다. 약품 사용 전혀 없이 유기농 보리와 각종 채소를 재배하고 이를 닭들에게 급여한다. 행복한 닭이 낳은 건강한 계란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약초골농원의 강구영 대표를 만나봤다.
유기농에 향한 진심이 인정받기까지
강구영 대표는 2004년 ‘유기농사’를 처음 시작했다. 일찌감치 친환경농산물 생산을 시도했지만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고객관리가 어려웠다. 아직은 건강한 유기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낮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강구영 대표는 “표고버섯, 산양삼 등 다양한 작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했었다. 우리 제품을 한 번 맛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꼭 재구매가 일어나긴 했지만 가격 장벽이 너무 높았다. 공판장에서는 제 값을 받지 못했고, 판로도 적었다. 일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직거래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계절에 따라 판매 상품이 변하다 보니 고객에게 정보를 알려준다는 것이 호객 행위처럼 인식되는 위험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고민 끝에 집중하게 된 것이 바로 ‘계란’이었다.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철학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일 년 내내 수요가 있고, 연중 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반응도 뜨거웠다. 물론 이 때도 어려움을 있었다. 2007년 당시에는 거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찾는 시장이었고, 택배 발송조차 쉽지 않았다. 계란 특성상 파손이 쉽기 때문이다. 강구영 대표는 “계란 택배를 시작하고자 했는데, 어떤 회사도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파손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손 되더라도 보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하고서야 우체국과 거래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우리 계란 한 번 맛보면, 못 잊으시죠
강구영 대표는 늘 질 좋은 계란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해 오고 있었다. 산란계 650수로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으며, 친환경 무항생제 인증을 받았다. 사육환경도 철저하게 따져 케이지사육이 아닌 자연방사로 스트레스를 줄였다. 직접 재배한 보리를 급여하고, 노른자의 색상이 진하지 않은 것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유기농 아로니아를 첨가해 먹인다. 유기농 미강도 발효시켜 사료에 첨가한다. 강구영 대표는 “발효된 사료를 먹이면 소화 흡수율도 높고 닭의 장이 튼튼해진다.”고 설명했다.
약초골농원의 계란은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고유의 고소한 맛과 냄새를 지닌다. 비릿한 잡내가 전혀 나지 않아 어린이, 입맛이 예민한 분들, 암 환자를 비롯해 질병이 있는 분들도 주요 고객이다. 지난 2017년 전국을 휩쓸었던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유기농 계란에 대한 관심도 커졌고 동물복지와 친환경에 관심을 가진 소비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한 번 약초골농원의 계란을 맛본 손님들은 다시는 일반 계란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고백이 이어진다고.
이렇게 유기농에 진심인 고객들도 한 분 한 분 늘어나면서 소통도 이어졌다. 지금은 고객들이 ‘계란 외에 또 다른 상품 있어요?’라고 먼저 문의를 해 오시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작물들도 유통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특히 약초골농원은 최근 계란값 급등에도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에 신규 고객이 늘고 있다. 일반 계란과 유기농 계란의 가격 차이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강구영 대표는 “가격을 올리지 못한 이유는 2007년 계란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고 10년 넘게 드시는 충성 고객들 때문이다.
그리고, 농부는 정직해야 합니다. 고객님들과 약속한 가격은 원가 상승요인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변동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기농을 구매하고 싶지만, 호주머니 사정 때문에 못 드시게 되는 분들도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큰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고객들에게 좋은 계란을 드시게 하고 싶은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함양 내 축사 신축 어려워, 유기축산농가 고려한 정책 필요
대한민국에서 유기농 농가를 유지하기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유기농을 권장하면서도 각종 규제와 제한이 발목을 묶고 있기 때문이다. 강구영 대표는 규모를 좀 더 키우고 싶어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함양군 조례 상 축사를 신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 국토부. 농림부 3개 부처 합의에 의해 민가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곳에 축사를 신축하거나 양성화는 가능해 졌지만 함양군 조례는 너무 까다롭다. 떨어져야 하는 거리는 자치규약인데 함양군은 1.5km다. 함양군을 직선으로 잰 거리와 같다. 신축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축종에 따른 구분도 있어야겠지만 사육방식 사육 규모에 따른 기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구영 대표는 “유기축산물을 생산하는 것은 가축이 섭취하는 사료의 유기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또 유기농산물을 하려면 유기농퇴비가 필요하다. 순환 농업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옛날에는 집에서 가축을 기르며 생기는 퇴비를 밭작물에 주고, 곡물 생산하면 그것을 또 사람이 먹고 나머지는 가축이 먹는 순환이 이뤄졌었다. 지금은 순환이 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지금은 유기농을 하려고 일본에서 유기농 퇴비를 수입해 오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격은 20kg 1만5천원로 어마어마한데, 여기에 유기농이라며 보조지원금을 준다.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비판이었다.
강구영 대표는 “농업은 자연순환이다. 유기농업도 예외가 아니다. 유기농 퇴비가 있어야 유기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으며, 유기농산물이 있어야 유기축산이 가능하다. 현실은 어떠한가 유기축산을 위해 유기농 사료를 수입하고, 유기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인근 국가에서 유기농 퇴비를 수입한다. 한편 국가에서는 비싼 유기농 퇴비를 이용해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를 돕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는 유기농 퇴비를 생산할 축산 농가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약초골농원의 유기농법이나 닭 사육법을 배워간 사람도 있었지만 함양에서는 시작할 수가 없으니 다른 지역으로 떠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함양군의 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 ‘유기농’을 향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유연한 정책 변화가 보인다. 무엇이 진정 환경을 생각하고, 우리의 식탁의 건강함을 완성하는 길일지. 강구영 대표의 고심에 귀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