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사는 얼마 전 불탑 속 부처님 무릎에 ‘우담바라’가 핀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우담바라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신성한 꽃이다. 나무는 있지만 평소에는 꽃이 없다가 3000년마다 한 번 꽃이 핀다고 알려진 전설의 꽃이기도 하다. 와룡사의 민해 주지스님은 “사실 우담바라는 유니콘, 용처럼 불교 세계관의 환상에서만 존재하는 꽃이다. 풀잠자리알이 우담바라처럼 보인 것뿐이다. 언론에 우담바라로 소개된 덕분에 와룡사를 찾는 분들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법회를 통해 정확한 사실을 알려드리고 있다. 다만 우리들 마음속으로는 우담바라로 믿고 귀하게 여기자고 했다. 힘들고 지친 중생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단순히 착각이라 넘기기에는 의미가 깊다. 처음 이 우담바라가 목격된 이후로 계속해서 그 수는 늘어났다. 경북대 식물학과 교수는 직접 보고 ‘이것은 우담바라가 아니다. 풀잠자리알일 뿐이다. 길어봐야 15일만 필 것이다’라고 평가 내렸지만 약 100일 넘게 목격되기도 했다. 이를 본 신도들이 그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묻자 ‘이론적,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신기한 현상임에는 틀림이 없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민해 스님은 우담바라가 아니라고 하셨지만 전설의 꽃이라 여겨지는 우담바라가 와룡사에서 목격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 답은 민해 스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찾을 수 있었다.
스리랑카 국가가 인정하는 민해 스님
땅도 지원 받아 사찰 건립 중
민해스님은 스리랑카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는 스님이시다. 스리랑카에서 ‘랏다카푸라’라는 계를 받기도 했다. 스리랑카에서 전쟁, 내란,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나라에서 보호해 주도록 지정 되었을 정도로 권위가 높다. 스리랑카의 마힌드 전 대통령과도 독대를 한 바 있고 지속적으로 교류를 이어 가고 있다.
민해 스님은 “한국에 왔던 스리랑카인이 한국 불교를 배우고 싶다고 와룡사를 찾아온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스리랑카와 유대를 하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잠시 멈췄지만 스리랑카 국가적인 차원에서 땅 만 평을 지원 받았다. 이곳에 불사를 진행하고자 공사 중이기도 하다. 앞으로 사찰 안에 학교와 식당을 지어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계획이다. 이후에 인재들은 한국으로 뽑아 와서 근로자로 일하게 도울 생각이다.”라는 계획을 전했다.
와룡사에도 한국에 와 있는 스리랑카, 네팔, 베트남인들이 자주 찾는다. 쌀을 올리고 꽃을 올리며 한국 불교를 접하고 교류를 이어간다. 민해 스님은 “스리랑카, 네팔, 베트남 등 외국인 학생들도 많이 와 여러 국가 언론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나는 이 외국인들도 모두 딸, 아들이라 부른다. 보고 싶어 하고 서로 전화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 고국으로 돌아간 이들 중에서도 한국말을 하는 친구들은 자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최근에도 ‘코로나 조심하라’며 전화가 왔는데 눈물이 났다. 옛날에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외국에 가서 일했을 때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것이 큰 힘이 되었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전했다.
불사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
민해 주지스님은 ‘불사’를 멈추지 않는 스님이다. 불사가 되지 않으면 그 사찰은 죽게 마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불과 5년 전, 민해 스님이 오시기 전까지만 해도 폐가나 다름 없었던 와룡사 터는 계속해서 사진처럼 발전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민해 스님은 “크든 작든 불사는 계속 하고 있다. 건물 안에 신심을 일으켜주는 불사는 얼마든지 찾아 이룰 수 있다. 불사가 멈춰있는 사찰이 있다면 그것은 스님들이 찾지 않아서이나 귀찮아서 하지 않는 것뿐이다.”라고 강조했다.
민해 스님은 신도들과 앞으로 5년간, 스님 나이 60이 되기까지는 사찰불사에 전념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 동안에는 불교 박물관, 요양 시설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미 신도들 중에 요양보호사들이 많기 때문에 건물만 마련된다면 바로 운영이 가능할 정도로 준비는 착착 진행 중이다. 지난해만 해도 이미 신도들 가운데 8명이 요양보호사로서 합격했다.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정성으로 돌보기 위해 원을 세우고 준비해 나가는 일이기에 부처님이 도와주실 것으로 보였다.
그 이후에는 기도만 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전하셨다. 민해 스님은 “기도하는 것은 저축하는 것과 똑같다. 4년 전부터 주창하고 다닌 바다. 돈도 차곡차곡 쌓아 놓으면 무슨 일 생겼을 때 털어 넣어 해결되는 것처럼 기도도 그렇다. 기도를 한다고 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쌓여서 지나면 해결된다. 신도들도 평소에 기도하기를 권한다.”고 하셨다.
적극적 포교, 행동하는 것이 중요해
적극적인 포교도 강조했다. 민해 스님은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불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공양을 받기 위해 최소한의 행동이라도 해야 한다. 부처님은 ‘행하라’ 라고 했다. 스님이 행하지 않으면서 신도들에게 행하라고 하면 어불성설이다. 스스로 우러나서 행동할 수 있도록 법을 펼치고 여건을 만들어야 신도들은 따라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감동’을 주고 ‘모범’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퇴색되어 가는 불교는 닦아내야 한다. 지우개로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스님도 사찰도 적극적으로 세상으로 나와 포교를 해야 한다. 생동하며 움직여야 한다. 행할 수 있는 마인드가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 불교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뒤로 물러날 뿐이다. 현재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보면 종교의 20% 정도만 불교인데 그 중 80%는 헛되다. 또한 남아 있는 20% 중에 80%는 노년층이다. 계속 불교 이어가야 할 텐데 걱정이다. 감언이설이 아니라 진심으로 불교가 어떤 것인지 일러주어야 한다. 요즘은 탁발이 없어졌지만 소승처럼 탁발도 하는 자세여야 한다. 새벽에 바루 들고 맨 발로 탁발을 다니던 마음으로 하다보면 신도들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도 강조했다.
우담바라 야간학교 운영,
사주, 관상, 철학 공부하며 친견 통해 신도들과 가까워져
민해 주지스님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선 ‘야학’도 진행 중이다. 우담바라가 목격된 이후 ‘우담바라 야간학교’를 운영하는 것. 마친 인터뷰를 한 날은 우룡 큰스님의 명서 ‘화엄경 약찬게’ 책을 마치고 책거리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민해 스님은 “80권 분량의 책을 압축시켜서 중요한 대목만을 실어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