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은 우리나라의 호두 시배지다. 그래서 천안 하면 호두과자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 호두과자 속에 호두가 들어있지 않았다. 모양만 호두 모양에 팥고물이 전부였다. 게다가 재료로 쓰이는 팥과 밀가루가 모두 수입산이었다. 천안의 명물로 소문난 호두과자가 천안과는 전혀 상관없는 재료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당시 많은 이들이 놀라고 허탈해했다. 이때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를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 이가 있으니 바로 천안밀영농조합법인 이종민 대표다.
많은 사람이 우리 농산물 선호해
당시 호두 농사를 짓던 이 대표는 마침 2007년에 열린 ‘천안호두축제’에 전권을 맡게 됐다. 호두 축제에 참가할 수 있는 품목을 100% 우리 농산물로만 한정했고, 축제를 통해 많은 사람이 우리 농산물과 가공식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8년과 2009년에는 천안웰빙식품엑스포에 참여하며, 천안을 대표하는 상품을 찾던 중 우리 밀, 우리 호두, 우리 팥으로 만든 호두과자를 떠올리게 됐다. “다른 호두과자는 몰라도 천안에서 판매되는 호두과자만큼은 전부 국산으로 바꿔봅시다.” 그는 주변 농민들과 뜻을 모았고, 밀과 팥 농사를 함께 시작하며 밀영농조합법인까지 설립하게 됐다.
이종민 대표가 ‘우리밀 호두과자 생산’에 대해 출사표를 던지니 평소 이 대표를 신뢰하던 이웃 농민들도 함께 참여 의사를 밝혔다. 모두가 십시일반 하여 3억7,000만 원을 모았고 그 돈으로 공장을 설비했다. 제빵 기술자들을 고용해 우리밀 호두과자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시작은 기대만큼 순탄치 않았다. 제빵 기술자들이 우리밀로 호두과자를 만들지 못했고, 들여온 기계도 수입밀에만 적합한 낡은 고물이었다. 여기서 한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이 대표는 직접 제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우리밀로 빵을 만든다는 유명한 빵집들을 찾아다니며 서로가 알고 있는 기술과 지식을 공유했다. 더불어 이웃 어른들에게 우리밀을 사용해 국수면을 뽑는 법도 배웠다.
밀영농조합법인을 시작하며 남는 밀가루가 있어 누구를 먹일까 궁리하던 중 군종법사를 하시던 스님이 국군교도소 교정위원으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도소 제소자들에게 주말마다 찾아가 빵을 만들어주었다. 또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전방부대를 찾아가 군인들에게 와플과 자장면을 즉석에서 반죽해 만들어주었다. 당시 2,000여 명의 군인들을 먹였으니 일반인 양으로 치면 3,000~4,000인분은 족히 될 양이었다. 좋은 일을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인데, 오히려 반죽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우리밀 사용하는 ‘천안옛날호두과자’
그리고 2014년 드디어 우리밀 호두과자가 탄생했다. 진짜 천안 명물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호두과자점 어느 곳에서도 호응해 주지 않았다. 이 대표는 직접 호두과자를 만들어 롯데마트에 입점해 판매를 시작했다. 반응은 최고였다. 수입 호두과자와 비교했을 때 같은 가격에 양이 좀 적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우리밀 호두과자를 더 선호했다. 소문은 천안 각지로 퍼졌고, 결국 천안옛날호두과자와 MOU 체결을 맺으며 천안에 우리밀 호두과자 정식 생산을 성공시켰다.
우리밀 가공학교가 필요한 이유.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밀은 400만 톤에 이르는데, 국내에서 생산되는 밀은 약 4만 톤에 불과하다. 올해는 그마저도 안돼 3만 톤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생산량이 줄고, 밀 농사를 짓는 농민의 수도 줄고 있다. “우리밀은 가을에 시작해 봄에 추수하니 농약을 칠 이유가 없어요. 우리밀로 제빵 하시는 분들은 호흡기 질환이 없다고 해요. 밀가루가 날리면 호흡기를 자극하는데, 우리밀은 괜찮더라는 거죠. 그만큼 우리밀이 좋다는 건 이제 많은 사람이 아는 것 같은데, 문제는 우리밀을 사용해 빵도 만들고, 국수도 만들어야 하는데, 조리법이 전부 수입밀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우리밀 소비가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대표는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밀 가공학교’를 서둘러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밀로 만든 면은 아침에 먹고 점심때 먹어도 불지를 않아... 배달음식에도 좋죠.”
수입 밀가루도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이 따로 있다. 우리밀도 호두과자를 만들기 좋은 고소밀과 빵용에 적합한 금강밀이 따로 있다. 이 대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의 제과점과 국숫집을 방문해 우리밀 반죽법을 전수하며 우리밀 판로를 넓혀왔다. 그리고 “누구든 우리 밀로 칼국숫집을 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맛있는 칼국수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소문을 냈다. 그때 한 사람이 찾아왔다. 남편이 퇴직하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며 국숫집을 열고자 했다. 이 대표는 이들에게 우리밀로 면을 뽑는 기술을 전수했는데, 이곳이 바로 5년째 줄서서 먹어야 하는 천안의 명물 ‘우밀칼국수 1호점’이다. “우리밀로 만든 면은 아침에 먹고 점심때 먹어도 될 정도로 불지를 않아요. 속도 편하고, 수입밀보다 훨씬 맛있는데, 몰라서 못 만드는 거예요. 그게 안타깝죠. 그래서 제가 지금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밀 가공학교를 만들어서 기술을 전수해야 한다는 거예요.”
천안은 우리밀 가공식품 대표 고장
이 대표는 연간 600~800톤의 밀을 생산하고 1,300톤을 수매한다. 이 대표의 밀가루는 파주에서 제주까지 전국구로 판매된다. “천안에는 제분 회사들이 있어서 저는 타지로 판매해요. 대신 제분 회사들에게 비싸게 팔지 말라고 하죠. 비싸게 팔면 내가 공급할 거라고. 그래서 여기는 국산 밀이 최저가에요. 천안에 빵 잘 만드는 친구, 케이크 잘 만드는 친구, 쿠키 잘 만드는 친구들이 있어요. 정기적으로 만나서 봉사 활동도 같이하고 친목 도모도 하다 보니 공유가 잘 되죠. 이들만 봐도 천안은 이제 호두과자뿐 아니라 다양한 우리밀 가공식품의 대표지라고 할 수 있죠. 타지에서도 우리밀 케이크를 대량으로 사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케이크도 비싸지 않아요.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이유가 밀가루를 비싸게 팔지 않기 때문이죠. 천안이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못 할 이유가 없죠. 우리밀을 만드는 기술만 전수하면 어디서든지 건강한 가공품을 생산하고 먹을 수 있는 날이 온다는 거죠. 정부와 사회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합니다.”
이 대표는 우리밀 레시피를 널리 퍼트려 많은 곳에서 우리밀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밀 가공학교’가 꼭 필요하다고 간절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