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가 자르르르 흐르고 입안에서 쫀득쫀득 밥알이 다가 아니다. 후각을 자극하는 구수한 누룽지 향에 입안에선 아밀라아제의 단맛을 느낄 수 있는, 덕분에 코가 즐겁고 입이 신나는 그런 쌀이다. 밥맛이 좋으면 반찬이 필요없다더니 이 쌀이 딱 그러하다. 따끈한 밥 한 숟가락 떠 입 안에 넣으니 세상만사가 다 평온해진다. 먹어본 사람들이 ‘맛있다’고 소문낸 쌀, 지인의 입에서 지인의 입으로 소문난 쌀, 그래서 그 맛을 믿을 수 있는 쌀, 바로 ‘신라향미쌀’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은 경주 국립공원과 운문산 자연휴양림 사이에 위치한 분지형 지형으로 청정구역을 자랑한다. 일사량 및 강우가 풍부하고 동쪽에서 불어오는 해풍으로 건강한 쌀을 생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논농사를 짓기에 나주평야와 김해평야같은 넓은 농토가 아니라는 점이 아쉬울 뿐이지 질적인 면에서는 부족함이 없다.
젊은 청년 농부의 활약
‘신라향미쌀’을 생산하며 원두정미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이상목 대표는 올해 37살의 젊은 청년 농부다. 사회생활을 하다 귀농해 쌀농사를 지은지 올해로 10년째가 되었다는 베테랑인데,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며 손사래를 친다. “농사는 해마다 기후와 환경이 달라서 해마다 새로 짓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항상 농사 일지를 기록해야 하고, 어르신들이 항상 가르쳐 주셔서 저는 늘 배우는 자세로 임하고 있어요.”
부모님의 권유로 귀농을 결심했다. 부모님이 하시던 가업을 물려받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젊은 생각과 사고가 더해져 ‘신라향미쌀’을 개발하게 됐다. “예전에는 흰쌀밥이면 그냥 좋았던 시절이었잖아요. 그런데, 쌀도 갈수록 넘쳐나니까 저는 쌀도 맛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서 늘 맛을 연구하게 되고 그러다 특수미를 알게 돼서 일반종과 ‘설향찰’을 섞어 재배하기 시작했죠. 따로 광고를 한 것도 아니고 할 줄도 몰랐고, 농협에 좀 들어가고 지인들에게 판 게 단데…. 이렇게 10년 하다 보니 지인들 소개 소개로 개인 택배량이 늘어나고, 또 경주시에서 하는 경주 몰에서 구입해 드시던 분들이 또 계속 구입하시고, 그래서 올해는 그 양이 부족해서 농협에는 못 들어갈 것 같아요.” ‘신라향미쌀’은 부모님의 경륜과 청년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맛 좋은 쌀로 생산되었고 오랜 기간 형성된 단골들의 입소문으로 판로는 꾸준히 확보되었다는 설명이었다.
대농의 꿈
현재 자가 3만 평, 임대 7만 평으로 총 10만 평, 약 500마지기를 운영하는 이 대표는 산내면에서 가장 젊으면서도 가장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대농이다. 이 대표는 쌀농사는 기후와 환경조건만 맞으면 흘린 땀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 농사지만 땅이 무한한 것이 아니다 보니 수익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최대한 생산단가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난 2019년 원두정미소를 지었다. “맛있는 쌀은 도정도 금방 한 게 맛있거든요. 정미소를 짓고 나니까 그런 점이 소비자들한테 또 좋죠. 또 지역 어르신들한테도 좋고, 건천 등 인근지역에서도 다 와요. 저는 또 약간의 수수료도 벌고.” 정미소는 청년창업기반 자금을 지원받아 현대식으로 지어졌다. 가까운 곳에 정미소가 생겨 논농사를 짓는 인근지역 주민들도 이제 멀리 갈 필요가 없어졌으니, 젊은 청년 농부의 적극적인 행보가 마을에도 큰 위안이 된 셈이다.
일손 부족은 농촌의 현실
이 대표는 일손이 늘 부족한 게 애로사항이라고 밝혔다. “요즘에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촌에는 잘 안 오려고 해요. 다 도시로 가고 공장으로 가더라고요. 지금 한 분 쓰고 있고, 가족들이 다 같이 하고 있는데,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죠. 농기계가 있어도 한계가 있고 지역 어르신들도 다 연세가 있으시고, 그래서 저처럼 자식들이 다시 들어오는 경우도 많아요.” 일손 부족에 대한 대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회와 정부가 나서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도심에서의 일자리 부족과 농촌에서의 일손 부족이라는 희귀한 사회현상을 바로잡는 날이 꼭 와야 할 것이다.
농한기에도 해야 할 일 많아…. 최적의 효율을 추구하다
농번기가 지나고 나면 농부에게도 휴식기가 온다. 그러나 이 대표는 휴식이란 게 없다. “지난해에는... 하루 쉬었나? 농사를 안 지을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든요. 농사짓는 분들이 그러세요. 농사지어서는 딱 먹고만 산다고. 그래서 농사만 짓고 있을 수는 없고 비수기에는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요. 시간 날 때 드론항공방제 기술도 따고….” 농사꾼은 부지런해야 한다더니 그의 부지런함은 농한기에도 발현됐다. 이 대표는 3년 전 드론자격증을 따고 드론항공방제 기술을 익혔다. 이전 같으면 인력이나 헬기를 동원해 대단위 방제를 했을 텐데, 드론을 운용하고부터는 드론항공방제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이쯤 되니 이 대표의 농사 철학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생산을 이루는 최적의 효율!’ 그래서 정미소도 드론항공방제도 도입한 것이다. “그래도 투자한 게 많아서 계속 빚을 갚아 나가야 하는 게 있죠. 그나마 부모님이 기본바탕을 다 해 놓으셔서 처음부터 시작하려는 사람들보다는 제가 수월한 편이겠지만요.” 이 대표의 드론항공방제 운용은 이미 경주시에 소문이 자자하다. 이는 그만큼 부지런하단 뜻도 내포되어 있다.
저온 창고가 필요해!
정미소에 드론항공방제 기술까지 도입한 이 대표에게는 또 하나의 계획이 있다. 생산한 쌀을 맛있게 보관할 수 있는 ‘저온 창고’를 짓는 일이다. “농사는 한 해에 한 번 딱 추수하잖아요. 그런데 소비자들은 쌀은 조금씩 조금씩 사드시기 때문에 저는 그 쌀을 맛있게 보관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죠. 그래서 큰 저온 창고를 짓는 게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죠” 그는 사시사철 소비자들에게 맛있는 쌀을 제공하기 위해, 저온 창고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이런 대견한 마음 때문일까. 경주시의 작은 마을에서 생산되는 ‘신라향미쌀’은 쌀농사로 유명한 경기도와 청정지역 제주까지 알 사람은 다 아는 명성을 떨치고 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들어와 가업을 이으며 논농사를 지어온 이 대표는 4년 전부터 해마다 생산되는 햅쌀 100포씩을 불우이웃을 위해 기증하고 있다. 대농의 배포도 그의 능력만큼이나 크고 넉넉하다. 정말이지 이 청년 농부의 10년 후가 너무나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