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는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이어온 우리의 전통 그릇이다. 제사나 명절에 혹은 결혼 혼수로 항상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유기가 가진 살균효과나 보온 기능이 크게 주목 받으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고급스러운 황금빛을 뽐내는 이 유기그릇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원재료인 구리와 주석을 정확한 비율로 맞춰야 하며, 뜨겁게 녹인 쇳물을 부어서 모양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늘 긴장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여기에 주물과정과 표면을 깎는 가질 작업까지 대단한 집중력과 기술력이 요구된다. 하나의 그릇을 만들기 위해 구슬땀 흘리고 있는 천년유기공방의 신상우 대표를 만나봤다.
30년 장인정신, 300여 가지의 디자인 보유
신상우 대표는 30년 넘게 유기그릇을 만들어 온 장인이다. 그는 “20대부터 유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친구 집에서 유기 제작을 했었다. 쇳물을 붓고 그릇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들을 보는데 신기하고 아름다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교육을 받았다가 중간에 침체기가 와서 잠시 건설 쪽에도 종사했었지만, 2008년 다시 유기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돌아왔다. 그 때부터 공장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나만의 디자인들을 발전시켜 왔다.”고 회상했다.
현재 신상우 대표는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개발해 300여 가지 이상의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순조롭기만 했던 것만은 아니다. 시작하고 1년 동안은 그릇 하나 팔지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갈수록 고객층은 두터워졌다. 각종 공예대전에 출전해 스무 번 이상 각종 상을 휩쓸었고, 전국 규모의 대전에서는 통일부 장관상도 수상했다. 관광공사가 주관한 대회에서도 높은 성적을 거둬 청와대에서 수상을 한 적도 있다. 이런 성과들이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다뤄지면서 손님들이 차츰 찾아왔던 것. 자신만의 디자인과 특성으로 산업디자인 대회에서도 벌써 4번이나 좋은 성적을 거둬 1번만 더 출전하면 ‘디자인 작가 인증서’도 받게 될 예정이다. 또한 도청에서 명장신청을 추천해서 준비하고 있다.
신상우 대표는 “새로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 처음 배울 때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데 급급했고, 공장을 차리고서도 한동안은 계속 실패를 겪었다. 혼자는 할 자신이 없었는데 집사람의 내조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늘 디자인적으로 조언을 해 주고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준다.”며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수작업으로 만든 고급 유기, 사용하다보면 기성 유기와 차이 확연히 알게 될 것
최근에는 유기를 찾는 손님들이 더 늘고 있다. 살균 효과가 뛰어나 각종 질병 예방에 효과가 있어 건강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보온과 보냉이 탁월해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주목 받았다. 또한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이는 느낌 때문에 플레이팅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선호하고 있다.
유기의 이런 인기를 틈타 상업적으로 유기그릇에 접근하는 업체들도 등장했다. 기계로 유기그릇을 찍어 내는 방식으로 대량생산함으로써 싼 값에 판매하는 것이다. 신상우 대표는 “전통 유기는 예술가의 정신과 기술로 수제 작업으로 만들어 내야만 고유의 강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압연 방식으로 프레스에 넣어 찍어내고 만다. 금형을 제작해 그냥 스덴(스테인레스)밥그릇 찍듯이 찍어내는 것이다. 그리고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다 보니 유기그릇에 대한 이미지가 낮아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진정한 ‘유기’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은 천년유기공방의 수제 고급 유기만을 찾는다. 프레스로는 감히 찍어낼 수 없는 디자인인데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유기들은 녹슬고 변해가지만 신상우 대표의 유기는 오래도록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급 레스토랑의 쉐프들은 특별한 자신만의 디자인으로 제작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신상우 대표는 “수제이기 때문에 가격은 높은 편이지만 품질이 프리미엄이기 때문에 특별히 찾는 사람들이 많다.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원한다면 다른 곳으로 가라고 냉정하게 말씀 드린다. 일반인들은 아마 얼핏 봐서는 차이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용하게 되면서 자연히 알게 된다. 원하는 디자인만 알려주면 그대로 제작이 가능하다. 특별하고 개성 넘치는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서 찾는 수요도 많아 수출도 활발했다고 한다.
극한 직업이라 기피하지만, 우리 전통 계승해 나간다는 사명감 커
상우 대표(신상우 대표)는 유기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근성’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기술력도 필요하지만 힘겨운 작업인 만큼 끈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뜨거운 쇳물을 붓고,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얼마나 고된 지 TV 인기프로그램인 ‘극한 직업’에서도 다뤄지기도 했다.
신상우 대표는 “일이 고되다 보니 젊은이들이 배우려 하지 않는다. 대를 이을 수 있어야 하는데 투철한 장인정신이 없으면 힘든 일일 것이다.”라면서도 “유기그릇은 선조 때부터 내려온 우리의 전통인 만큼 끝까지 계승해 나가고 싶다. 새벽 5시면 문을 열고 시작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공장 문을 열고 불을 피우고 일하고 있다.”고 의지를 밝혔다. 올해의 계획도 현대적이고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고 출품하는 것이라고 한다. 디자인을 개발할 수 있는 개발실, 전시장, 손님접대방 등 공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끝으로 신상우 대표는 경주시에는 “어려운 소상공인에 관심가지고 직접 공무원들이 현장에 방문하면서 어려움 애로사항 청취하고 지원해 주었으면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모르면서 탁상행정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바람을 전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