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시위 사태가 참혹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지난 24일 치러진 홍콩의 구 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사상 처음으로 의석수 과반을 획득하는 압승을 거뒀다. 294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하며 총 투표율 71.2%를 기록했고 이는 4년 전 구의원 선거 때 보다 47% 더 높게 나타났다.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구 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은 전체 정당 452석 가운데 86.7%인 392석을 차지하면서 민주화를 부르짖는 홍콩의 민심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18세에서 35세 사이의 유권자가 12.3%로 최고 증가 폭을 보였다.
홍콩명보는 지난 25일 선거 결과에 대해 “범민주 진영의 압승은 중국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홍콩 행정 장관 선출에 보다 많은 민의를 반영하려는 바람이 담긴 결과”라고 분석하며 “젊은이들의 참여로 송환법 반대 시위를 이끈 시민단체 대표들과 친중파를 견제하려는 정치 신인들이 대거 입성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홍콩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민간인권진선’단체의 지미 샴 대표가 샤틴구에서 당선됐고 2014년 우상혁명의 주인공이었던 ‘조슈아 웡’ 대신 출마한 케빈람도 사우스호라이즌스도 웨스트구에서 큰 표차로 승리했다. 지미 샴 대표는 지난달 쇠망치를 든 괴한들의 테러로 중상을 입기도 했다. 홍콩대학교 3학년 요르단 팽도 처음 선거에 출마해 친중파 유명 정치인인 호러스청을 물리치고 당당히 구 의원에 당선됐다.
구의원은 사실 입법회(한국 국회 격) 의원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다. 하지만 2022년에 열릴 행정장관 선거인단 1200명 가운데 117명이 참여할 수 있어 친중파 일색인 선거인단 구성에 조금이나마 물갈이를 해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베이징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홍콩 행정수반 선출 선거인단제도 자체가 친중 성향 인사로 채워지게 설계돼 있어 완전한 자치정부 구성을 원하는 홍콩시민들의 염원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들 117명이 끊임없이 홍콩정부와 베이징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면 조금씩 변화를 이끌 가능성은 있다.”고 분석했다.
선거가 끝나고 당선된 의원들과 시민들은 홍콩이공대로 모였다. 시위진압으로 홍콩이공대에 갇혀 있는 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은 없었지만 팽팽한 대립은 계속됐다.
중국정부의 ‘중국몽’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시 주석은 권위주의를 바탕으로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를 내세워 홍콩, 마카오에 대한 통제력을 높여 대만 통일까지 바라봤지만 홍콩 사태가 장기화 되며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사태를 바라본 홍콩 람 장관은 성명을 통해 “홍콩 정부는 선거 결과를 존중해 시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진지하게 반영할 것”이라 했고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정부는 람 장관이 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7개월째 장기화 되고 있는 홍콩 시위는 지난 2월 대만에서 벌어진 한 살인 사건에 의해 시작됐다. 대만으로 여행을 떠난 홍콩커플 중 남성이 현지에서 여자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 홍콩으로 도피한 사건이다. 경찰이 이 남성을 체포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속지주의로 인해 29개월 징역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자 홍콩 정부는 이를 계기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을 추진하기로 한 것. 그러나 시민들은 이 송환법이 추진되면 중국 정부가 이 법안을 악용해 홍콩의 반체제 인사 및 인권운동가 등을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데 악용할 소지가 있어 이를 막고자 거리로 나온 것이다.
지난 9월 4일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송환법 철회를 공식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 사태가 장기화 되고 있는 것은 송환법 반대라기보다 홍콩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축적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시위대 요구사항을 들여다보면 ‘송환법 공식철회’외에도 행정장관 직선제,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및 석방, 민주화 등의 내용이 포함돼있다.
미국은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 대해 지지 의사를 표하고 있다. 홍콩의 기본적 자유를 억압하는 데 책임이 있는 자에게 미국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이 상·하원을 통과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홍콩의 사태 책임을 미국으로 돌리는 분위기다. 정쩌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전날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를 불러 “홍콩 문제가 중국 내정”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미국 상·하원에서 홍콩 인권 법안이 통과된 것을 지정 조치하라.”고 강력 항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