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시대가 도래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흘러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시대가 격변하기 때문에 사회 문화적으로 변화가 신속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휴식은 필요하다. 우리 전통 문화는 ‘쉼’에 미학이 있다. 어떻게 보면 느리다고 할 수도 있는 서예와 문인화를 연구하고 공부하며 그리는 삶은 이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 곳이 과열되면 정반대의 것 역시 힘을 얻기 마련이다. 월암서화연구원 손영호 원장은 이를 강조하며 서예와 문인화, 그리고 동양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낙이망우 ( 樂以忘憂 ), 40×35cm
군포 월암서화연구원 설립 동기와 목적은 무엇인지?
“지금부터 한 10년 남짓 됐지요. 사회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들어와 연구실을 설립했습니다.”
경주에서 태어나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 고려대학교(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손영호 원장은 효성그룹 홍보실, 삼성전자, 롯데그룹 대홍기획 등 여러 기업을 전전하며 평탄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고 관심을 가졌던 서예와 한문 공부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대한 아쉬움이 간절하여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인사동 동방연서회, 구당서실 등에 나가 서예 공부를 하였고, 문인화 공부를 위해 수원대 미술대학원에서 미술학(문인화전공) 석사과정도 졸업했고, 구기동 민족문화추진회(고전번역원)의 한문 야간강좌에도 참여하면서 꾸준히 노력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기업에서 홍보와 광고, 그리고 출판업무 등을 하였고, 1987년 정부출연기관인 한국소비자원이 개원할 때, 창립 멤버로 참여하여 정년 퇴직까지 직장인의 자리를 지키느라 개인적인 관심사인 서예와 문인화, 한문공부는 흉내만 내면서 미루어 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정년퇴직 후, 손 원장은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사회생활을 모두 접고 본격적으로 서화공부에 매진하고 후진 양성을 하기 위해 월암서화연구원을 설립한 것이다. 집과 가까운 산본역 앞에 위치한 연구원에서 손영호 원장은 요즈음 10여명의 문하생들과 함께 매일 서예와 문인화를 공부한다고 전했다.
석란 ( 石蘭 ), 35×45cm
“서예와 문인화 공부에 동양고전 연구까지”
손영호 원장은 군포에 생각보다 동양고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은퇴 후 관심을 갖고 알음알음 알게 되어 한문강좌에 참여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다만 지금은 문하생이 많이 줄어든 상태다. 코로나 시국이기에, 많은 이들이 외출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아들기락의 고등학교 졸업식때 가족사진
“작년과 재작년은 코로나 때문에 연구실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렇지만 서예와 문인화는 여전히 위생에 유의하면서 개별적으로 와서 공부하고, 한문강좌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 실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문강좌는 운영한 지 약 4년 정도 되는데,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 강독을 거의 마무리 하고, 올봄부터는 시경과 서경을 강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외손녀 재이와 제주도 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운영하지는 않아… 함께 공부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
지금 연구실에 드나드는 원생 인원으로 연구실이 운영이 되냐는 질문에 손영호 원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운영하는 게 아니니 가능한 일이죠. 우리는 함께 공부하려고 모인 것이지, 제가 돈을 벌려고 연구실을 차린 건 아닙니다. 수입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우리 전통문화의 명맥을 잇고, 서예와 문인화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온 이들에게 손영호 원장은 최선을 다해 지도한다고 했다. 회원들의 나이가 대부분 사회생활을 은퇴한 고령층인데, 가끔씩 젊은 원생들이 찾아오기도 한다고.
몇 년 전에는, 초등학생 한 두명이 찾아온 적이 있다고 한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서예와 한문을 공부하기 위해 연구실을 찾은 것이다.
“처음에 와서 ‘붓글씨를 가르쳐 달라’고 하기에 잘 따라올 수 있을지 솔직히 탐탁찮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기특하더라고요.”
서예뿐 아니라, 사자소학도 읽고 설명해주고, 한자공부도 하게 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어려워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손 원장은 오히려 ‘즐거워했다’며 학생도 좋아하고 학부모도 연구실에 배우러 오는 시간을 좋아하셨다, 고 했다.
“잠깐이지만 이곳에서 공부한 경험이 그들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중에 그만 두었지만, 아쉬운 마음보다는 뿌듯함이 컸습니다.”
석국 ( 石菊 ), 35×45cm
손영호 원장은 무엇보다 서화와 동양고전을 공부하며 다름 아닌 ‘인성’을 강조했다.
“요즘은 인성이 문제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명예나 재물을 위해 과도한 경쟁을 하다보니 사회적 부작용도 많지요. 물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내에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여를 해야 할 게 아닙니까. 남들에게 베풀 수 있고, 또 그로 하여금 자신도 그런 공동체 내에서 살면 마음이 참 편할 겁니다.”
앞으로 서예와 문인화를 공부하는 문하생들과 함께 나아가고 싶은 길에 대하여
“해방 이후에는 우리가 주로 그림 하면 서양화를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옛날부터 그리는 그림이 있습니다. 지금은 동양화, 또는 한국화라 부르고, 수묵화라고도 부르는데, 특히 전통적인 선비 그림을 문인화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사군자, 즉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이지요. 그림으로도 아름답지만 소재 자체가 선비랄까, 군자의 기상을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사군자를 많이 그렸습니다. 그 외에도 연꽃, 포도, 소나무, 모란 등 간결하면서도 내재적인 함축미를 표현할 수 있는 소재를 위주로 그리는 게 문인화라 부를 수 있죠.”
군포미술협회 수석부회장, 감사, 자문위원 등을 지냈던 손영호 원장은 ‘사실 군포시는 문화 예술 부문에 많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더욱 문화예술정책을 강화해주길 바라고, 군포지역의 미술인들이 전시활동이나 창작활동을 하는데 군포시의 지원이 보다 확대되기를 회망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과 심사위원, 단국대 동양화과 외래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미술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 손영호 원장은 앞으로 동양고전 연구와 함께 서예와 문인화 창작활동에 더욱 왕성한 활동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아직 대면 사업이나 전시회를 여는 것에는 제약이 있지만 차차 나아질 미래를 꿈꾸며 차분히 작품을 준비하고, 회원들과 함께 회원전 개최등 군포지역의 예술활동이 활발히 전개되도록 노력하고, 동양고전 연구활동에도 힘을 기울려 지역사회에 우리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