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이 없는 사람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으며 불고 빨아들이는 작은 호흡으로도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호흡의 연습이 많이 필요한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작게는 4개의 구멍에서부터 크기와 형태는 리드라고 하는 금속판이 들어있는 구멍을 통해 입과 혀로 연주되는 것이라면 모두 이 악기를 시초로 한다는, 이 악기는 어떤 악기일까? 정답은 바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악기인 하모니카이다. 하모니카는 그 휴대의 간편함을 인정받아 전쟁터와 우주라는 공간에서까지도 연주되었고,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쉽게 연주할 수 있어 연령도 가리지 않는다. 한국하모니카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이혜봉 (사)한국하모니카연맹 회장의 연대기 또한 이러한 하모니카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쉽고 즐거운 악기, 하모니카의 매력에 빠져 그것을 알려온 70년의 삶
6.25 전쟁통의 7살 꼬마가 부산 피난지에서 처음 만난 하모니카와의 인연은 이제 칠순을 넘어 80세가 된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아마 90세 100세가 되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손에서는 하모니카가 계속 들려 있으리라. 그렇게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하모니카와 함께 해왔기 때문일까? 그는 여전히 7살 어린아이처럼 즐겁고 유쾌했으며 여든이라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젊고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그의 하모니카와 함께 살아온 이력은 말할 것도 없이 화려하다. 국내외 연주 500여 회 이상, 방송 출연 1000회 이상, 하모니카 교본 50여 권 저술, 음반 30여 회 취입, 하모니카 합주 팀 10여 개를 50여 년 동안 지도하고 지휘했다. 세계 하모니카협회 한국 지회장과 코리아 하모니카 앙상블 리더를 맡고 있다. 전국에 하모니카 인구가 35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강사가 700여 명, 지부가 22개 정도 있는데, 그의 손을 직간접으로 거쳐 간 이들이 150만 정도가 되는 것 같다고 하니 한국 하모니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의 하모니카 교습에 참여했던 셈이 되는 것이다. 한국 하모니카의 발전을 위해 살아왔던 그가 처음 만났던 하모니카는 어떤 악기였을까?
‘쉽고 즐겁다.’ 그것이 하모니카라는 악기의 가장 순수한 매력이 아니었을까? “전쟁통을 지나고 아는 친척 형이 하모니카를 가지고 있길래 그냥 달라고 떼를 썼어. 하지만 그냥 줄 수는 없다. 그럼 1주일 만에 하모니카를 네가 불 수 있다면 그때 주마.” 그렇게 시작했던 하모니카와의 인연이, 고등학교 1학년 동아리반을 통해 더 다양한 하모니카를 만나게 되면서 그것이 평생에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하모니카는 손을 쓰지 않아도 되고 악기를 배우는데 제약이 거의 없다 보니, 그는 소록도에서 병자들에게도 악기를 가르쳐서 81년도 교황이 방문했을 때 연주를 했었던 경험도 그에게 소중하다고 했다.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까 가능했죠. 대신 소리도 잘 들리지 않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니 바닥을 쿵 하고 한 번 치면 인사, 쿵쿵쿵 세 번 치면 합주 시작. 이런 식으로 지휘를 했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대한 철학은 확고했다. “한국에서 하모니카를 한다고 하면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진정 하모니카를 연주한다고 하면 프로페셔널하게 가수들의 노래 이상으로 하모니카를 연주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모니카 연주를 요청하는 지자체와 같은 곳에 대해서도 그는 따끔하게 일침을 했다. “열정페이처럼 연주해 달라고 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는 너무 야박하다. 공연을 기획하고 그에 대한 지원 예산을 받을 때 얼마나 책정이 되겠는가? 그런데 연주자를 모셔다가 하는 대우는 겨우 밥값 정도밖에 주지 않으려고 하면 연주자가 성장하겠는가?”
그의 필생의 염원은 하모니카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한국의 하모니카 역사는 일본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것이 지금에는 일본에서는 열기가 식고, 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들에서 더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모니카는 다른 악기와는 달리 조직이 잘 구성되어 있어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연맹이 있고, 세계연맹이 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세계대회의 심사위원도 맡아서 활동하고 있다. 세계대회는 4년마다 아시아연맹은 2년마다 국제대회를 개최를 치른다고 한다.
하모니카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에게 이제 남은 과제는 하모니카에 관한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야구회관과 축구회관은 있지만, 음악 회관은 없어요. 하모니카 회관을 하나 만들어서 국제대회도 개최하고 교육과 전시도 하고 싶어요. 양산에서 동의보감 박물관이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박물관을 열기에는 부족하니 저에게 연락이 왔었는데, 그것에 따른 지원도 같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제대로 갖추어진 공간이 만들어진다면 그때 그동안 제가 모은 하모니카가 4000점, 10억 원의 가치가 좀 넘는데, 하모니카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기증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건립이라는 과제와 함께 그는 언제나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발전, 하모니카라고 하는 악기의 발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독일에 호너라고 하는 하모니카 브랜드가 1년에 천만 개 정도의 하모니카를 만들어 판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라고 못할 것도 없거든요. 그것을 고양시에서도 진행할 수 있는 것인데 정부나 지자체에서 더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합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하모니카 국제대회를 하고자 하는데 공무원의 무조건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던 일이 있었다고 했다. 하모니카에 대한 저변은 늘어나고 있는데 그것을 뒷받침해 줄 만한 정부의 노력이 없어 발전을 막고 있는 것이 늘 아쉽다는 것이었다.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악기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순수하게 하모니카의 거장으로서의 이혜봉 회장은 오로지 하모니카라는 악기의 발전,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들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음악을 하면서 밝고 순수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 그래서 그러한 심성을 잘 키워주어야 한다는 그의 소신이, 다른 협회나 조직과는 달리 하모니카협회가 국제적인 조직으로까지 잘 이어지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했다. 하모니카라는 악기를 통해 모두가 즐겁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제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그의 연대기가 더 오랜 시간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