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선 명창은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13살 때였다. 우연히 TV에서 ‘새타령’을 듣고 따라해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소리가 그대로 나와 준 것. 그 때부터 고향인 대전에서 소리를 하기 위해 학원을 찾아 다녔다. 고(故) 이기례 선생님과 김윤 선생님을 만나 실력을 갈고 닦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연고도 없는 서울에 혼자 올라와 무형문화재 57호 이윤주 선생님 댁에서 기거를 하며 본격적으로 수업을 받았다. 뛰어난 능력에 성실함까지 더해져 장학전수생으로 나라에서 장학금을 지원 받으며 경기민요를 이수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후에도 배움을 향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서른여섯 나이에 서울예대에 입학해 대학에서도 국악을 배웠다. 실력으로는 이미 자리를 잡은 후였지만 학벌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뒤늦게 한 결정이었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도 늦깎이 대학생에 도전한 것.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때 저도 대학교 1학년에 입학한 거였어요.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때에 보살펴주지 못해 미안했죠. 하지만 아이가 성인이 된 지금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사는 모습이 오히려 좋았다고 말해주네요.” 이후에도 공부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다. 용인대로 편입을 했고, 이어 추계교육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최근에는 휘모리잡가도 이수 받았다.
2017년 11월 국회 의장상 및 경기민요 대통령상 까지 수상
끝없이 정진한 결과 2017년에는 11월 국회의장상 그리고 국악인들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혜선 명창은 “각 파트별로 대결을 해서 1등을 가리고, 그 1등끼리 다시 모여 대결을 해서 종합적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것이라 힘들기도 했는데 결국 종합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할 수 있었어요. 너무나 뿌듯한 순간이었죠.”라고 전했다.
뛰어난 실력이 알려지면서 주위에서 교육을 받고자 하는 이들의 요청도 쏟아졌다. 고양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일본 등에 방문해 국악을 알리는 공연도 펼친 바 있다. 또한 한국국악협회 고양시지부 부지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혜선 명창은 국악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선사한다. 스스로 굉장히 꼼꼼하고 세밀한 성격이기에 작은 부분도 완벽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노래를 배우는 과정에서 잘 되지 않았던 부분까지도 하나하나 세세히 집어서 완성시켜 드린다고 자부한다. 국악에 있어 한 단계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만들어 드린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을 집 짓는 것에 비유한다면 내부 인테리어까지도 세심히 챙기는 스타일이에요 강약조절을 가르쳐 드리고 시김새를 이용해 끌어드리죠. 뻣뻣했던 노래가 부드러워지고 작은 부분까지도 완벽해 집니다. 혼자서는 발전해나가기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을 교정해 주기 때문에 만족하시는 분이 많아요.”라는 설명이었다.
우리 민족의 가락과 소리 이어간다는 사명감
이혜선 명창은 무엇보다 국악이 널리 사랑 받고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민족의 가락과 소리를 이어 간다는 사명감이 강하다고 했다. “국악으로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보다는 우리 민족의 가락을 이어가고, 널리 보급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요. 사실 다른 것을 40년 이상 했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로 높은 수익을 안정적으로 내겠지만 안타깝게도 국악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해요. 국악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근근이 맥을 이어오는 것이 현실이죠. 그런데도 국악에 대한 관심이 낮고 예술인들이 설 곳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예술로 풍족해질 수 없다는 것은 국악 종사자들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국악 인재 설 곳 적어... 국악인도 정교사로 교육 가능했으면
우리나라의 음악인 ‘국악’의 발전을 위해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꼭 국악이 포함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국악인도 정식 교사로서 어린 학생들에게 국악을 체계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기를 부탁했다. 이혜선 대표는 “우리나라 말은 국어이고 우리나라 역사는 국사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음악은 바로 ‘국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음악만 학교 정규 교과과정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겉돈다. 그냥 음악 교과 중에 일부분일 뿐이다.”라며 “국악을 전공하고 대학원 박사 학위까지 수료해도 졸업하고 나서 갈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초등학교 정식 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도 없다. 가능한 것은 그저 특별활동에서의 지도일 뿐이다.”라고 한탄하며 국악 인재들, 실력 있는 후배들이 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도록 초등학교에서 단 한 명이라도 정식교사로서 국악 선생님을 채용해 주기를 촉구했다.
코로나로 잠시 멈췄던 교육과 공연, 다시 활발히 해 나갈 것
경기민요연구소는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그 동안 수업을 열지 못하고 있다. 회원분들과 함께 팀을 결성해 진행하던 회원분들이 결성되어 요양원, 요양병원 등으로의 봉사 공연도 잠시 멈춘 상태다. 방과후 수업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던 것도 중지된 상태. 다행히 개인별 일대일 수업과 소규모의 그룹수업 등을 시작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마스크를 쓰고라도 수업을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다행히도 비대면 공연이나 영상물 제작은 이어오고 있지만 어려움이 크다.
이혜선 명창은 “어려서부터 별명이 오뚝이였다. 힘든 과정을 많이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늘 오뚝이처럼 벌떡벌떡 일어나서 살았다. 주위 분들이 ‘참 열심히 사는 모습이 너무 좋아’라고 칭찬해 주고 응원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다.”며 주변에서 지지해 주고 격려해 준 가족과 지인들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될 수 있었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 소리와 가락을 지켜 온 이혜선 명창과 같은 분들이 있기에 우리 국악도 명맥을 이어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보다 깊은 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