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음악 시간마다 저마다의 악기를 가지고 삑삑거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젊은 세대는 오카리나를, 중년층은 팬플룻이 이러한 기억과 관련된 악기가 될 것이다. 후 불기만 해도 오롯한 소리를 내는 매력을 기억하리라. 오늘은 팬플룻과 오카리나의 매력을 진작 알고, 전문가 양성을 위한 협회를 만든 한국팬플룻오카리나강사협회 홍광일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팬플룻과 오카리나도 전문가가 필요해
팬플룻오카리나강사협회는 2004년도에 홍광일 회장에 의해 설립되었다. 홍광일 회장은 오카리나랑 팬플룻을 하게 된 지 30년 넘었는데, 팬플룻과 오카리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하게 되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대학교의 전공도 없고, 전문가도 없는 상황인데 사회적 요구는 커진 상황인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방과 후 교육이 활성화되고, 학원 같은 곳에서도 특수 악기에 대한 특강을 시작하다 보니 가르칠 사람이 필요했다. 초창기는 오카리나나 팬플룻을 취미로 했던 사람들이 그냥 강사로 자연스럽게 하게 됐었는데 문제는 기준이 없었다. 대학에서 전공을 했다든지, 국가 공인 자격증이 있다든지 그런 게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홍광일 회장은 악기를 제대로 알리는 게 아니고, 잘못하면 유행 타다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고 한다. 크로마하프의 경우 80년대 9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가 있었던 악기였으나 지금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홍광일 회장은 지도자 부족으로 인해 연주 기법이나 교육 기법에 대한 연구가 따라주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홍광일 회장은 악기 분야가 전체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을 많이 양성하는 게 가장 중요한 어떤 길이 되겠다고 판단하였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지금의 한국 팬플룻오카리나 강사협회를 만들게 된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상시 정규 회원이 한 1,500명 정도였고, 지금은 시기상 반 정도로 줄어 800명 정도를 웃돈다고 한다. 한국팬플룻오카리나 강사협회는 전국 지회가 한 30개 정도 있고, 그 지회에 또 속한 이제 회원들이 곧 전문가, 강사다. 회원들이 지도하는 학생들이나 수강생들까지 하면 연계된 학생 수는 몇만 명으로 추산 가능하다.
오카리나와 팬플룻의 시작
오카리나는 180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의 부드리오라는 도시에서 주세페 도나티라고 하는 사람이 고안한 악기다. 이탈리아어로 오카는 거위고, 리나는 작다는 뜻으로 합치면 작은 거위라는 뜻을 가진다. 전 세계적으로 각 나라마다 흙으로 빚어 만들 악기가 존재하지만서양 음계를 쓰고 있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오카리나가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활성화가 되고 퍼지고 있다. 다른 악기들보다 좀 더 사람들한테 각광받는 이유는 누구든 쉽게 배우고 빠르게 발전할 수 있으며, 악기 가격도 저렴하고 소지 또한 간편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색소폰이나 바이올린과 같은 기성 악기들은 배우기도 쉽지 않지만 다른사람 앞에서 연주를 하는 경지에 오르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오카리나는 빠른 성취가 가능하기에 사람들한테 굉장한 동기 부여를 주는 악기다. 일반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자신과먼 분야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럴수록 오카리나를 배우러 와서 성취감을느낀다고 한다.
팬플룻이라는 악기는 우리나라에 좀 더 빨리 들어왔다. 루마니아의 게오로그 장피르라고 하는 인물이 70년대 후반에 ‘외로운 양치기’라는 곡을 발표하고, 그게 당시에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도 70년대 말-80년대 초부터 큰인기를 끌었다. 그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그 시절 팬플룻에 대한 감성과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팬플룻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는 대학마다 동아리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홍광일 회장 역시 그때를 시작으로 팬플룻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80년대 중후반 되면서 일본 NHK 방송에서 오카리나가 소개되었고, 오카리나의 자연적이고 신비한 소리가 팬플룻을 했던 사람들에게 성향적으로 많이 어필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다수의팬플룻 연주자들이 오카리나를 좋아했기에, 이런 이유를 바탕으로 홍광일 회장은 오카리나와 팬플룻 두가지 악기를 포함하는 해당 협회를 창립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초심을 지키는 교육자의 길
홍광일 회장은 오카리나 제작은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교육자로서 자신의 인생 철학에 위배 되는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육자로서 강사 양성이 홍광일 회장이 선택한 길이다. 홍광일 회장은 강사를 양성하고 그들의 처우 개선과 강사들을 대변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며, 강사들뿐만 아니라 팬플룻과 오카리나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사업들을하고 싶다고 밝혔다. 국제 페스티벌을 지속해서 주도해온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국팬플룻오카리나 강사협회의 차별화된 경영 방침이나 노하우는 공동 운영과 비영리성에 있다. 회비를 내서 공동 운영을 하는 만큼 이익도 공동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한국팬플룻오카리나 강사협회와 홍광일 회장, 이하 수많은 회원들은 오카리나와 팬플룻의 발전을 위해 의로운 일을 한다는 전제하에 봉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수고만큼 한국팬플룻오카리나 강사협회는 소속된 강사들에게 협회 활동을 기반으로 의뢰가 들어오더라도 수입에서 수수료를 떼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도 팬플룻 오카리나 강사 및 전문가로 살아가는 전문인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협회에서 강사와 전문가들의 이익을 대변할 때, 오카리나와 팬플룻을 직업 삼아 더 연구하고 노력하는 전문인들이 더 많이 생겨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오카리나와 팬플룻을 즐길 수 있게 되는 선순환의 고리가 바르게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더욱 협회의 역할과 발전에 의지를 강하게 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음악으로 다가갈 기회가 오길
홍광일 회장은 앞으로 한국팬플룻오카리나 강사협회가 시에서 하는 각종 행사와 문화 사업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시와의 협약을 통하여군포시만의 특성화된 일들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음악치료와 시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문화 활동에 팬플룻과 오카리나가 더 많은 방향으로 시민들과 밀접해지길바란다고 전했다. 그의 바람처럼 시에서 팬플룻과 오카리나 문화 쪽에도 투자가 이뤄지길 바란다.
한국팬플룻오카리나 강사협회 회원들에게 홍광일 회장은 “오랜 기간 협회를 사랑하고 신뢰해주신 분들한테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며 회원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뿐만 아니라 감사한 회원들에게 부응하고자 초심을 잃지 않고자 한다며 굳은 마음가짐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홍광일 회장의 애정과 열정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적으로 와닿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