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 특집/세종수제기타 김의 대표

양주시 특집/세종수제기타 김의 대표

이은…

양주시 특집/세종수제기타 김의 대표

 

대를 이어 명품 수제기타 만드는 기타장인

세종수제기타 김의 대표

 

- 1972년 설립된 세종학교’, 아버지의 대를 이어 수제기타 제작

- 첫 공정부터 마지막 공정까지 수작업

- 윤도현밴드 등 아티스트의 제작 요청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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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선율은 그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인다. 또한 여러 악기들과 어울려 멋진 음악을 완성한다. 좋은 기타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수제기타를 선호하는데 사소한 손길하나의 차이로도 음색이 달라지기 때문에 숙련된 명인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수제기타를 만드는 것은 섬세하고 예민한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주요 재료인 목재의 선정부터 기타의 앞 뒤판 재단, 측면 부착, 넥 부분 조립, 기타 줄 연결, 칠 작업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기타다. 이 과정에서의 미묘한 차이는 소리에 엄청난 차이를 야기하게 된다. 수제 기타 제작 명인인 세종수제기타의 김의 대표를 만나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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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들이 믿고 맡기는 수제기타 제작의 명인

김의 대표는 1972년부터 세종학교라는 이름으로 수제 클래식 기타를 제작해 온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수제기타 제작의 맥을 이어 가고 있다. 1996년에 부도를 맞으며 한 차례 위기도 겪었지만, 김의 대표는 군 제대 후 대형 악기회사에서 2년간 기술을 연마하고 2000년부터 아버지의 브랜드를 이어 받아 세종수제기타를 운영하고 있다. 세종수제기타는 이미 기타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힌다. 윤도현밴드가 나는가수다무대를 준비하면서 수제기타 제작을 요청하기도 했을 정도로 아티스트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다. 소리공학이나 기술면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정평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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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수제기타는 한 달 평균 50에서 100대의 기타를 생산한다고 한다. 고급 기타를 주로 생산할 때에는 약 50대 정도이고, 저가형과 함께 제작할 때에는 100대 정도라는 설명이다. 100% 국산 재료를 사용해 첫 공정부터 마지막 공정까지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그야말로 기타 장인의 손길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닿은 작품인 셈이다. 따라서 고객이 원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악기를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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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수작업으로 맞춤 제작 가능

김의 대표는 대부분 회사들은 기타 넥은 구입해서 조립하거나, 바디만 구입해서 조립한 뒤 칠을 뿌려서 마무리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요. 반면 저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소리나 디자인, 모든 것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요.” 라며 자신했다. 연주인의 소리 취향 하나까지 고려한 맞춤 제작이 강점인 셈이다. 김의 대표는 사실 외국에는 유명한 브랜드도 많고 그 역사도 깊다. 음색, 퀄리티, 소리 등을 구현해 내는 데 있어 유명브랜드의 기술을 따라 하고 있다. 가격은 절반 정도지만 품질은 비슷해서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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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세종수제기타에서는 평생 AS가 가능하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기타는 얇은 나무로 제작되어 습도에 민감한 만큼 날씨에 따라 변형이 쉽게 오기 때문이다. 저가 브랜드나 외국의 수입 제품의 경우 수리가 힘들고, 한 번 수리를 하고자 할 때 비용 부담도 높은 반면 세종수제기타의 경우 자사의 제품의 경우 끝까지 책임진다. 항상 좋은 컨디션으로 연주를 할 수 있게 관리해 주기 때문에 꾸준히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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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화 소량생산으로 이어나갈 것

여전히 매력을 알고 찾아주는 수요층은 있지만 수제기타시장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는 일본 수출도 많았다는데, 쓰나미 이후에 해당 지역이 파괴되면서 수출길도 막혔다.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낮은 가격으로 수출을 감행하면서 가격경쟁력을 잃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김의 대표는 최대한 고급화 하고, 품질을 향상시켜 소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것이다.”라고 방향성을 밝혔다. 가격이 높더라도 고품질을 찾는 소비자들을 공략하겠다는 것. 이에 안양에 새롭게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앞으로 수제기타 제작을 배워 갈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장을 활용해야 하고 손도 쓰고, 구부정한 자세로 일을 하는 등 육체적으로 강도가 높은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악기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도전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막상 작업을 하다보면 육체적으로 부담이 큰 직업이에요. 먼지도 많이 나고, 몸이 힘들기 때문에 젊은 친구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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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 대표는 악기 생산의 역사가 벌써 7~80년이 되어갑니다. 기존에 숙련공들도 고령화 되는 가운데 그분들이 일을 그만두면 수제기타는 아예 사라질 수도 있어요. 이런 분야에 장인정신이 이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라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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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하신 아버지의 뜻 이어나갈 것

2022년은 김의 대표에게는 힘든 한 해이기도 했다. 오랜 세월 기술을 전수해주고, 함께 꿈을 키워오던 아버지가 작고하신 해이기 때문이다. 함께 전국 여기저기를 돌며 기타를 판매하기도 했었던 방식에도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제가 자재 구매부터 주문 전화 응대, 제작까지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하니 정신이 없네요. 아버지 때는 물건을 싣고 전국 한 바퀴 돌기도 했었는데...” 흐리는 말끝에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물씬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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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수제기타제작을 향한 애정과 장인정신은 김의 대표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앞으로도 제작되는 수량은 적어지겠지만 품질 향상에 더욱 집중해 완전한 고급화와 전문화를 이뤄가겠다는 만큼 김의 대표의 손끝에서 완성된 기타의 아름다운 선율을 계속 듣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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