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문화재연구원은 문화유산을 발굴, 보존, 연구하는 민간 조사연구 사업수행기관이다.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이나 유적 등 문화유산에 대한 과학적 조사와 분석을 수행하고, 학술연구와 보존처리 등 문화유산과 관련된 종합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25년째 문화재 발굴과 조사를 통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는데 앞장서 온 서봉수 원장을 만나봤다.
사전 문화유산 조사는 각종 개발행위에 있어 필수
문화재보호법상 아파트 건설이나 도로 개설 등 각종 개발행위를 함에 있어 사전 문화유산 조사는 필수다. 법적으로는 일정 면적(3만m2)이상일 경우 반드시 문화재 지표조사부터 예비조사(시굴조사), 발굴조사를 해야 하며, 문화재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면적에 상관없이 지자체장의 권한에 의해 조사의 의무를 지닌다. 서봉수 원장에게 개발 중 문화재 발굴과정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우선 지표조사가 이뤄진다. 이는 옛 문헌과 주변 유적현황이나 기조사된 유적 등을 파악해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파악하고, 현장에서 육안으로 입지를 관찰하면서 유적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따라서 문화재청의 검토를 받고 자문을 받는 과정 등을 거치며 예비조사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없는 지역은 공사를 진행한다. 예비조사 과정에서 유적이 확인되면 정밀발굴조사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렇게 조사된 유적은 크게 3가지 경로로 ‘보존’이 이뤄진다. 중요도가 매우 높아 개발 자체가 중지되고 그대로 보존하는 ‘현장보존’, 최대한 원형 그대로 박물관이나 역사공원으로 이전시키는 ‘ 이전보존’.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적의 입지, 유물 하나하나까지 사진, 그림, 글로 기록해 보고서로 작성하는 ‘기록보존’이다. 기록보존의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후 계획된 공사는 진행할 수 있게 조치된다. 고양시에서도 최근 도내동 서울문산고속도로 공사구간에서 수천점 가량의 구석기시대 유물이 조사된 바 있으며, 행주산성 내 발굴조사에서 새로운 시대의 유적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역사박물관 하나 없는 고양시,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서봉수 원장은 고양시 지자체 차원의 역사나 문화 인식은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중에 전문적인 문화유산 전공자도 전무한 편이며, 그나마 있는 전문직인 학예연구사는 열악한 계약직 형태로 고작 두 명이 전부다. 인구 100만의 특례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박물관 하나가 없다. 지난 몇 년간 고양시내에 의식있는 분들의 노력으로 역사박물관 설립을 추진해왔고 본인 또한 추진위원으로서 나름 노력해 왔지만 시장이 바뀌고 정책이 변경되면서 순식간에 지난 수년의 노력이 일순간에 정지된 일도 있다. ‘박물관보다는 수익을 낼 수 있는 관광에 집중하라’라는 기조 때문이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지고 몇 년을 투입해 예산을 확보하고 부지 선정 단계까지 이르렀는데 올스톱 되었다. 시장이 바뀌니 정책이 바뀌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수원시만 하더라도 문화전문 인력이 10명 이상이며 박물관이 4개에 달한다. 역사는 등한시하고, 눈에 보이는 관광시설 확충에만 나서고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다.” 따끔한 지적이었다.
문화재 연구 위한 여건 열악해
누구나 쉽게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소리 높이곤 한다. 그러나 사실 문화유산 연구를 위한 현실적인 여건은 열악한 편이다. 서봉수 원장은 우선 일반인들의 낮은 문화 인식을 지적했다. 문화재를 ‘돈’으로 환산해 평가하는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서봉수 원장은 “개발 현장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대부분 문화재 조사를 원하지 않는다. 사유재산을 침해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품명품’과 같은 프로그램 역시 숨어있는 문화유산을 끌어내는 효과는 있었지만 문화재를 경제가치로 평가하게 만들고, 소위 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만 유용하다는 인식을 심었다.”라고 지적했다. 언론의 보도행태 또한 문제가 많다. 항상 문화재 발굴 소식을 보도할 때면 으레 ‘문화재 발굴로 공사지연’, ‘공사에 막대한 피해’ 등의 표현을 아무 생각없이 쓰기 때문. 이와 같은 표현은 문화재 발굴을 개발을 가로막는 행위쯤으로 치부하게 하는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일반인들의 낮은 문화인식은 이러한 정책적 오류와 언론의 행태, 전문가들의 안일한 교육이 낳은 결과이다.
이와 더불어 관련 인력에 대한 처우도 열악하다. 종사자들은 대부분 대학원 과정까지 끝마친 인재들이지만 다른 직종에 비해 현실적 처우는 현저히 열악한 것이 현실. 이는 거의 모든 조사기관들이 비영리법인으로 국가의 지원없이 운영을 해 나가는데, 발굴조사에 투입되는 예산이 낮기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다. 서봉수 원장은 “현실적으로 임금과 복지가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좋은 인력들이 유입되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책임감과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가던 민간연구기관들의 인재들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유출된다. 젊은 연구자들을 안정적인 공무원인 학예연구사 등의 시험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백두문화재연구원에서도 나름 최대한 직원들의 임금과 복지를 보장하고, 상호 신뢰를 쌓아나가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제대로 된 문화유산 연구를 위해서는 축적된 경험을 쌓은 인재들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화 관련 인식 높일 수 있도록 ‘교육’ 적극 참여
서봉수 원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교육’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로서 시민들을 위한 역사 교육에도 적극 나서려 하고 있다. 서봉수 원장은 “일반인의 역사나 문화 인식이 낮은 것은 수준낮은 정책적 과오와 함께 전문 지식인인 학자들의 잘못도 크다. 그 동안 그들만의 리그에서 시민을 위한 교육을 등한시 했던 것이 사실이다. 누구나 문화유산을 쉽고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그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라고 의견을 전했다. 시민뿐 아니라 공무원 교육 역시 중요하다고 밝혔다. “공무원 보직이 일이년 마다 순환근무를 하다 보니 전문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무원 전체에 대한 역사나 문화인식 교육의 과정을 통해 국가 문화정책 전반에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는 의견이다.
백범 김구선생님이 엄중한 일제의 위협속에서도 문화강국을 꿈꾸셨지만 그 길은 아직 멀단다.
북한, 중국, 러시아까지 옛 우리의 터전 조사 하고파
백두문화재연구원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언젠가 북으로의 길이 열리거나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위쪽의 유적을 조사하고 싶다는 열망이 담긴 선택이다. 연구원 이름에 ‘백두’를 포함시킨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서봉수 원장은 “일례로 개성공단 부지 공사 이전에도 사전 조사를 했었다. 북한은 거부했지만 겨우 설득해서 약식으로나마 조사를 했는데 엄청난 양의 유적이 확인됐다.”고 설명하며 “북한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어마어마한 유적들이 땅밑에 남아 있다. 개성이든 평양이든 북한에 분소를 설립하는 것도 작은 꿈이다. 백두산, 개마고원까지 누비며 북한의 유적을 조사하고 싶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중국, 러시아 연해주 등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도 조사연구하고 싶은 희망도 전했다. “올라가야죠!”라며 투지를 밝히는 서봉수 원장의 눈빛이 반짝였다.